[강선영의 하루한줄] 일상의 투명한 모순으로 착실하게 빚어낸 언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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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영의 하루한줄] 일상의 투명한 모순으로 착실하게 빚어낸 언어들
  • 강선영 기자
  • 승인 2021.04.02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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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깨달았다. 펭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사람들은 펭수의 세계 안에서 웃음뿐 아니라 슬픔과 괴로움도 기꺼이 겪는다. … 굳이 강요하지 않아도 열 살 펭귄의 외롭고 서글픈 ‘모멘트’를 이해하고 공감한다. 힘든 일이 많았기에 더욱 호쾌하게 웃을 수 있는 인물, 그리고 그런 이야기. 어쩌면 사람들이 정말 보고 싶어 하는 건, 그리고 내가 정말 쓰고 싶은 건 그런 이야기인가 보다.”

 

'자이언트 펭TV'의 시작부터 함께한 작가, 염문경의 첫 산문집. ‘펭수 작가’이기 이전에, 염문경은 꽤 많은 연극과 영화를 거친 배우이고, 최근엔 감독으로 단편 영화 '백야'를 만들었으며, 장편 영화 '메이드 인 루프탑'의 시나리오를 쓰고 배우로도 출연했다. 누가 봐도 일 벌이기 좋아하는 사람. 하지만 알고 보면 “다재다능하시네요”라는 인사말에 잠깐 으쓱하다가 곧 주눅이 드는, 조금은 복잡한 마음을 가진 내향형 인간이다. 

세상이 무례하게 느껴질수록 좋은 농담이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 그가 자신의 일과 일상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를 날카롭고 따뜻한 시선으로 벼렸다. 세상과 내 안의 모순까지 모두 끄집어내어 부드럽게 껴안으려는 시도 속에서 우리는 광활한 온라인 플랫폼의 시대에, 조금은 짓궂을지라도 해롭지 않은 농담을 만들고자 하는 창작자의 예민하고 섬세한 감수성을 엿볼 수 있다.

농담은 기본적으로 “세상의 가치나 상징을 모방하거나 희화화하면서 발생”하는 것이기에, 모두가 웃더라도 쓴웃음을 삼키는 한 명은 분명 어딘가 존재한다. ‘누구도 불편하지 않은 농담’은 현실에서 찾기 힘든 유니콘 같은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한편, 관습과 엄숙주의를 비틀고 싶은 자신의 욕망과 취향으로 버무린 농담이, 때로는 과도하게 ‘용기 있는 행동’으로 추켜올려지거나 혹은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선택하는 작품과 행보가 하나의 결을 만들고, 그것이 모여 나의 정체성이 된다는 것.” 

그는 “그저 재미있는 글을 썼을 뿐”이라는 말 뒤에 숨지 않기로 한다. 그에게 농담은 펭수가 상징하는 짓궂은 따뜻함을 세상에 전달하는 좋은 수단, 삶에서 발견한 아이러니를 가장 빛나게 전달하는 통로,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내 안의 삐죽대는 욕망”을 놀이로 바꿔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안전지대 같은 것”이다. 그렇게 소중한 것이 애꿎은 사람을 찌를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세상과 거리두기를 할 때마다 느슨해지는 마음을 다잡는다. 그 가운데 비로소 염문경표 농담이 만들어진다.

-염문경의 '내향형 인간의 농담'에서

강선영 기자 ksy@newsnb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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