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북은 매주 문인들을 만나 그들이 가진 독특한 창작 세계를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소소하면서 진지한 대담 속에서 그들의 눈으로 본 세상을 뉴스앤북이 독자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 뉴스앤북과 함께 분야와 지역을 넘어 다양한 책과 사람들을 만나보세요.

고광률 작가
고광률 작가

“거대하고 정교하게 짜여 있는 이 시대, 이 사회의 먹이사슬. 모두가 한 그물 안에 있고 모두가 공범들이다”

정치인들이 반대 진영의 주장에 반박할 때 흔히 “소설 좀 쓰지 말라”고 말한다. 이미 우리 사회에선 소설이 거짓말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뉴스앤북이 만난 고광률 작가는 그 소설을 통해 ‘지옥도 같은 정치판’의 은밀한 부분을 낱낱이 파헤치며 거대 권력에 맞서는 인물들을 서사한다.

연대적인 삶을 바라보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고 작가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Q.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A. 안녕하세요. 저는 고광률 작가입니다. 지난 1990년부터 대전에 터를 잡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어요. 현재 대학 문예창작,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며 대학신문사 학생들의 신문 제작을 지도하고 있죠

Q. 1987년 '호서문학'에 단편 '어둠의 끝'을, 1991년 17인 실천문학 신작소설집에 단편 '통증'을 발표하면서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문학을 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A. 저는 원래 화가가 꿈이었는데, 고교 시절 백일장을 통해 글재주가 있다는 걸 알게 됐죠. 당시 ‘얼굴’이란 제목의 작품으로 우수상을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 계기로 ‘모두 속아 넘어가는 좀 더 멋지고 큰, 그러면서 유익한 뻥을 쳐보자’란 마음을 가지고 작가가 됐어요.

Q. 많은 문학 장르 중 소설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면?

A. 소설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은 대학생 때 문학상을 받은 후입니다. 당선작 제목이 첫 작품집인 ‘어떤 복수’에요. 그때 제 작품을 선택해 작가의 길로 인도해준 은인이 바로 최학 작가죠. 그 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호서문학’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문학동인지인데, 당시 최 선생님의 주선으로 최상규, 박범신 작가의 추천을 받았어요. 이후 실천문학사에서 펴낸 앤솔러지에 작품을 발표하며 소설을 쓰게 됐죠.

Q. 지난 1월 장편소설 ‘뻐꾸기, 날다’를 출간했는데 소감이 궁금합니다.

A. ‘뻐꾸기, 날다’를 통해 정치가 필요악이 되어버린 지금 그 현실을 한 번 다뤄보고 싶었어요. 이념이 행복, 공익, 선 등을 이루기 위한 수단인데 정치가 그것을 목적으로 바꿔버렸죠. 선, 악이 아니라, 좌, 우의 개념으로 세상을 보고, 서로서로가 적이라고 합니다. 본래 이념은 대화와 타협이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그게 없다고 난리들이에요. 사실을 보려고 하지 않고 ‘의견’으로 사실을 만들려고 하죠. 그러한가, 그렇지 아니한가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따라서 서로 편을 갈라버립니다. 사실에 준해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의견이라는 세(勢)에 준해 세상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죠. 무책임하고 위험하기 짝이 없는 행동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현실과 사실 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공허한 의견이 만든 망상 속에서 사는 것이지요. 이런 문제를 바로잡아야 할 정치가 되레 이런 문제를 부추기고 그 속에서 이권을 챙기고 있는 것이죠. 이런 문제점을 좀 재밌게 얘기해보자 라고 생각했습니다.

Q. ‘뻐꾸기, 날다‘를 통해 사회의 어떤 부분을 이야기하고,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A. 세상은 특정인이 만들어가지 않고 모두가 어우러져 만들어가는 것이죠. 올바른 시민정신 없이는 민주주의가 불가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이 결코 녹록하지도 만만하지도 않아요. 그런데 우리는 세상을 공부하지 않고 소수의 사특한 정치인, 학자 들이 떠드는 대로 그걸 믿고 살아가려고 하죠. ‘뻐꾸기, 날다’에는 세상이 엄중하다는 것을 고민해보자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고광률 작가의 '뻐꾸기, 날다' 표지
고광률 작가의 '뻐꾸기, 날다' 표지

Q. 엄중한 세상이란 주장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 해주세요.

A. 정치의 해악이 뭔지 아십니까? 어느 대통령이 사람 목숨을 업신여긴다는 문제가 아니에요. 이런 문제도 엄청 중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가치관을 혼재시켜버리고 도덕은 물론이고, 양심마저 무가치하게 여기도록 만들었단 것이죠. 일부 정치인들은 잘못을 하고도 사과도 반성도 없습니다. 시간만 가기를 기다리며 상황이 바뀌기만을 바라는 것이죠. 이러니 사실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사실을 말하는 사람이 멍청한, 순진한 바보가 되는 거예요. 무도하고 패악한 세상을 정치인이 앞장서서 만들고, 학자나 지식인들은 눈치 살피며 방관하죠. 이런 정치가 대체 왜 필요합니까? 이걸 벗어나려면 사실을,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참과 거짓을 의견에서 찾지 말고 사실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죠.

Q. 이 소설을 준비하면서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나요?

A. 소설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보다 재미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 설정, 관계 속에서의 의미 생성 등을 고민했죠. 장면 중심적 작법을 선택한 것도 묵직한 주제를 전달함에 있어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서입니다.

Q. 거물 정치인에서부터 금융계 인사, 대학교수, 검찰, 경찰, 언론, 조직폭력배, 조선족 불법체류자에 이르기까지 정치란 민감한 부분을 소설의 주제로 설정한 이유가 있다면?

A. 현실을 얘기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등장인물들이었습니다. 이 인물들이 권력 내지는 폭력을 주체로 서로가 밀어주고 끌어주며 이권을 챙기죠. 그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넣어놓은 요소들입니다. 탁란(托卵)으로 종을 번식하고 보존하는 뻐꾸기 같은 자들의 파렴치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죠.

Q.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거대하고 정교한 먹이사슬 속 작가님이 가장 공감할 수 있는 계층이 있나요?

A.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 병폐가 노동, 토지, 화폐를 상품화해 거래한다는 겁니다. 사람이 돈으로 가치 매겨지고, 한정된 토지를 통해 돈으로 돈을 버는 문제가 자본주의의 한계이자 악이죠. 정치인들이 이를 잘 통제, 조정해야 하지만 권력마저 상품화시킨 겁니다. 마실저축은행 대표 허남두를 이용하는 정치인 백대길, 그리고 이들을 궁극적으로 이용하는 6선 국회의원 서종대를 잘 들여다보세요.

Q. ‘뻐꾸기, 날다’를 접하게 될 예비독자들에게 전해줄 가이드나 핵심 포인트가 있다면?

A. 등장인물 방이순을 주목해주셨으면 합니다. ‘굳이 정치를 통하지 않아도 될 일을 정치를 통해 하는 바람에 안 하니만 못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이에요. 정치가 없어져야 세상이 올바르게 된다고 주장하죠. 또 서이연을 통해서 살아지는 삶, 살아가는 삶의 차이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운전기사 구만복을 누가 죽였는지, 선우강규를 왜 가장 처참하게 다뤘는지, 그 의미도 찾다보면 책을 읽는 재미가 더해질 거예요.

Q. 소설 집필과 생업을 겸하는 부분에서 겪는 고충이 있다면?

A. 소설 집필도 먹고사는 문제입니다. 생업 속에 소설이 있고, 소설 속에 생업이 있어야 엄중하고 치열하고 고된 삶을 바로 얘기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되레 생업이 있었기에 제 소설이 더 풍부하고 윤택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소설 쓰기와 생업은 같은 것이죠.

Q. 앞으로 작품 활동 계획에 대해 궁금해지네요.

A. 대학 문제를 다룬 ‘시일야방성대학’이 통사(通史)라면, 열전(列傳)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두 권 분량의 연작소설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또 코로나19 시대를 보내면서 한국 개신교의 문제를 고민해보게 됐어요. 개신교는 정치, 경제, 문화와 아주 깊은 관계가 있죠. 그걸 들여다보고 싶어서 ‘성자의 행진’이란 장편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세 권의 책을 모두 올해 중에 출간하고, 지난 5년 동안 공부해온 충북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 얘기를 써볼 계획이죠. 유럽은 아직도 2차 대전을 소재로 다룬 비중 있는 작품들이 나오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을 잘 다루지 않더군요. 미국에게는 ‘잊혀진 전쟁(The Forgotten War)’이 될 수 있을는지 몰라도 우리는 아닙니다. ‘빨갱이’라는 용어가 이 당시 못지않게 험악한 의미로 지금도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에요.

Q. 작가님께서 추천해주고 싶은 책, 문인이 있다면?

A. 제가 좋아하는 작가 두 분만 말할게요. ‘백년의 고독’의 저자 가르시아 가브리엘 마르케스와 ‘영혼의 집’을 집필한 이사벨 아옌데입니다.

Q. 마지막으로 2021년 신축년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A.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해가 되자는 것이 꿈입니다. 그러기 위해 제가 뭘 어떻게 쓰고, 또 살아야할까를 고민해야겠죠 감사합니다.

◆ 작가 프로필

고광률 작가는 1961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뒤 단편 ‘어둠의 끝’(1987)과 ‘통증’(1991)을 발표하면서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고 작가의 소설집으로 ‘어떤 복수’(2002), ‘조광조, 너 그럴 줄 알았지’(2010), ‘복만이의 화물차’(2018)가 있고, 장편소설로는 ‘오래된 뿔’(전2권)(2012), ‘시일야방성대학’(2020)이 있다.

그는 대중소설을 연구하여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지난 2012년 호서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송영두 기자와 고 작가
송영두 기자와 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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