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알면 다 빠져 나가요. 절대로 그 건물에 사는 누구도 알게 해선 안됩니다. "

건물주의 당부를 머리에 새기며 현관문을 열자 "역한 냄새가 강렬하게, 마치 감당 못할 만큼 많은 양의 고추냉이가 든 초밥을 삼킬 때처럼 코 윗부분까지 순식간에 뚫고 올라온다."

신현종 조선일보기자
신현종 조선일보기자

본능적으로 발길이 창문으로 향한다. 숨을 참으며 창문을 열어 보려 애쓰지만 꿈쩍하지 않는다. 청록색 천면테이프가 직사각형의 창틀 사방을 꼼꼼히 에워 싸고 있다. 죽음으로 가는 안내자였던 착화탄이 새어 나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생을 온전히 마감하기 위해 애쓴 망자의 슬픈 흔적이다.

저자의 직업은 청소부다. 근데 그 앞에 '특수'자가 붙는다.

'특수 청소부'. 상상의 가지가 마구 뻗어 나간다.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은 때론 특별함이라는 반짝임을 선물하기도 하지만, 또 반면에 예상하기 힘든 고난을 수반하기도 한다.

『죽은 자의 집 청소』라는 책 제목이 일러주듯 저자가 하는 특수 청소의 많은 의뢰는 죽은 자의 집을 정리해 주는 것이다. 보통의 죽음에는 애도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세상사의 모든 희노애락이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듯, 간략하게나마 사후 처리를 부탁할 이조차 없는 쓸쓸한 주검도 있다. 흔히 고독사로 불리우거나, 사람들간의 왕래 없이 지내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경우가 그렇다.(자살을 고독사의 범주에 포함하는 문제는 세계적인 인류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청소 앞에 '특수'자가 붙는 이유는 온 집 안을 뒤덮고 있는 말라버린 피나 액체, 악취들을 제거하는 것이 전문적인 영역이기 때문이다.

의뢰를 받고 찾아 간 현장에서 청소부인 저자를 반기는 건 대부분 공중에서 윙윙거리는 금파리나 모퉁이 구석구석마다 구물거리고 있는 살오른 구더기들 뿐이다. 방독면 없이는 숨조차 쉬기 힘든 악취는 덤이다.

"죽은 사람의 몸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출한 것처럼 잠을 자듯 온전하게 유지되지 않는다. 뇌졸증이나 심근경색증 같은 심혈관계 질환이나 폐색전증 같은 허파 질환으로 사망한 경우 이삼 일만 내버려 두면 엄천난 양의 피와 액체가 몸에서 쏟아져 나온다. 목을 매고 숨을 거두면 직립한 채로 늘어진 사체가 근육을 조절하는 힘을 잃은탓에 온갖 오물을 배설해놓는다. '인간의 육체는 유기적인 화학 공장과 같다'는 표현은 상투적이지만 꽤 적절한 비유 같다. 사람이 죽으면 박테리아가 증식하여 온갖 장기가 부풀어오르고, 풍선이 팽창하다가 폭발하는 것처럼 복부가 터지며 온갖 액체를 몸 밖으로 쏟아낸다.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할 때 몸에서 수분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65퍼센트. 인체의 유기 물질과 체내 수분이 함께 쏟아진 뒤 부패하면서, 지하의 창문과 벽을 넘어 골목 어귀까지 이토록 비극적인 냄새를 뿜어댄다."

오랜 세월 이 세상에 머물렀지만 주변에 시신을 수습해 줄 이 하나 마땅치 않은 주검은 대부분 오랜시간 방치된다. 세상을 향한 일말의 미련일까. 사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악취는 공기를 타고 멀리까지 퍼져 그들의 안부가 전혀 궁금하지 않았을 사람들에게까지 망자의 소식을 전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 죽음에 가슴을 뜯기보다 혹여 망자의 불온한 기운이 한줌이라도 자신에게 묻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그들이 머물렀던 주택의 주인들은 그런 세입자를 들인 자신의 운을 탓하며, 많은 수소문 끝에 저자같은 특수청소부를 찾아낸다.

죽은 자의 집 청소
죽은 자의 집 청소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 때때로 부유한 자가 혼자 살다가 자살하는 일도 있지만, 고급 빌라나 호화 주택에 고가의 세간을 남긴 채, 이른바 금은보화에 둘러싸인 채 뒤늦게 발견된 고독사는 본 적이 없다.

부름을 받고 다다르는 곳곳에 가난과 고독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검게 색 바랜 빈곤의 잎사귀가 우수수 떨어져 도처에 널브러져 있는 것 같다...... 어떤 날은 죽은 이의 우편함에 꽂힌 채 아래를 향해 구부러진 고지서와 청구서마져 가난에 등이 휜 것처럼 보인다."

가난과 자살은 마치 금실 좋은 부부같다. 비록 가난에 등이 휘어 허리 한 번을 제대로 못펴고 생을 마감했을지라도, 그들에게 남은 한 줌 삶의 의지까지 앗아간 것이 오직 가난만은 아니었으리라. 사람은 세상에 온전한 자기 편이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살 수 있다.

쓸쓸하고 고독한 죽음. 저자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의 남은 흔적을 정리하며 그들의 마지막 눈에 담겼을 풍경도 짐작 해 본다. 가스관에 목을 맨 망자에게 숨이 넘어가는 순간까지 보였을 천장의 경계와, 몸이 돌아가는 찰나에만 등장했을 창밖의 풍경들을 말이다.

그렇다고 특수청소의 분야가 죽은자의 집 청소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다. 때론 방 안에 수 천개의 오줌 페트병을 지닌 집을 맞닥뜨리기도 하고, 또 더러는 몇 년동안 변기에 차고 넘치는 분뇨를 방치하여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청소가 가능할 거 같지 않은 정말 큰 산을 만나기도 한다(이 편의 이야기는 표현이 너무 생생해 완벽히 읽는 것 조차 불가능 했다.) '집을 정리해 달라'는 의뢰인의 주문은 언제나 간단하나, 문을 열고 들어서는 현장의 버라이어티 함은 늘 저자에게 새로운 가슴 뜀을 선물한다.

저자 소개를 보면 그는 대학에서 시를 전공했다. 졸업 후 출판 업계와 트렌드 산업 분야에서 일하다가 전업 작가로 살고자 삼십 대 후반에 산골에 들어 갔다.

시를 전공한 특수 청소부.

그래서일까. 그는 힘들고 고된 자신의 직업 대한 소회보다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 많은 이들의 삶에 집중한다. 부탄가스로 착화탄에 불을 붙인 후, 후에 부탄가스 통을 치워야 할 누군가를 생각하며 각각 캔과 플라스틱 상자에 온전히 분리수거를 마치고 죽은 망자의 흔적에 바쁜 일손을 멈춘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삶'이라고 스스로를 칭하고, "누구도 묻지 않은 죄를 스스로 지우도록, 나는 매일 밤 꿈속에서나마 용서의 순례길에 나서야 한다"며 끝없이 자신을 단죄한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모든 존재는 그대로 존귀하다. 그 순간만이 우리에게 천국을 열어준다"라고...

책을 읽는 내내 어떻게 매일 이런 하루가 가능할까 걱정되었지만, 저자는 '세상엔 즐거움으로만 가득한 노동도 없고 오직 괴로움으로만 이루어진 직업도 없다'고 모두의 염려를 일축했다. 즉, 이 힘든 노동의 끝에서도 만나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해방감'

저자는 그 감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살림과 쓰레기로 발 디딜 틈 없는 공간을 완전히 비우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텅 빈 집으로 만들었을 때 나는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느낀다."고 그는 소회했다. 문을 열었을 때의 충격에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아 현장의 문을 조용히 닫고 뒷걸음 쳐 나오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다가도, 이 모든 것을 말끔히 정리하고 났을 때의 해방감이 늘 그를 문 안의 세계로 인도한다.

책을 읽는 내내(정말 진심을 다해) 정말 이사람이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 맞을까 생각 했다.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아니 존경 받아 마땅한데도 스스로를 순례길에 올려 벌주는 사람. 자신에게만 끝없이 가혹한 채찍직을 가하는 사람. 그럼에도 그의 밤은 다시금 그를 잠못들게 한다.

"가난에 눈이 멀어, 혹은 가난에 눈이 뜨여 그 어떤 것에서든 궁핍의 냄새를 찾아내는데 솜씨를 발휘하는 청소부. 그 탁월한 솜씨가 행여나 가족에게 옮지는 않을가 늘 전전긍긍한다."

많은 외로움과 생과 사의 경계를 늘 마주하는 그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싶어하는 한가지는 분명했다.

"쌓인 눈이 녹아내리듯 서로 손이 닿으면 외로움은 반드시 사라진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쓴 책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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