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하찬은(필명)씨의 소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가 매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작가 하찬은(필명)
작가 하찬은(필명)

종현이를 만났을 때는 이미 해가 빌딩 뒤로 사라진 후였지만 어둠이 짙게 깔리지는 않았다. 
 종현이와 나는 포차에 마주 앉았다. 무거운 침묵을 깨고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종현이었다.
 “최근에 영호하고 통화했어?”
 “그러고 보니 좀 됐네. 벤츠 샀다고 자랑할 때 통화했으니까. 넌?”
 “며칠 전부터 전화를 안 받더라고.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멘트만 나오고.” 
 “그래….”
 그리고 또 침묵이 이어졌다. 종현이와 나는 별말 없이 한동안 술을 마시는데 집중했다. 종현이는 중간중간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나는 종현이의 빈 잔에 술을 따랐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종현이에게 하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모르게 그냥 말이 나왔다.
 “세상 사람 다 자살해도 종현이는 안그럴거라고 생각했어. 항상 생각 없이 즉흥적으로 사는 것 같았거든. 사업을 시작하고 잘 될 때도 그놈은 그냥 운이 좋아서 그렇다고 생각했거든. 그렇게 오랜 시간 만났는데 영호를 너무 몰랐던 것 같애.”
 종현이는 보일듯 말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술 잔을 들고 말을 이어갔다.
 “영호나 네가 아니라 세상 고민 다 짊어지고 사는 것 같은 내가 항상 니들보다 부족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했어. 그런 생각도 언젠가부터는 사치라고 생각했지만 말이지. 하여튼 자살이란거 나 같은 놈이나 한 번쯤 생각해보는 일이지, 니들 같은 사람들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했어.”
 이번에는 종현이가 내 빈 잔에 술을 채웠다.
 “사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영호는 너를 많이 부러워했어. 구체적으로 뭐가 부럽다고 말 한 적은 없지만, 학생 때부터 가끔 네가 부럽다는 말을 했거든.”
 “나를?”
 나는 의아한 눈으로 종현이를 바라봤다. 종현이는 옅은 미소와 함께 말을 이어갔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을 그저 다르다는 이유로 부러워하곤 하잖아. 네 말대로 종현이는 깊이 생각하기 보다는 일단 실행에 옮기는 스타일이고, 넌 학생 때부터 깊이 생각하고 신중하게 말하는 스타일이었으니까. 그래서 부러워했던 것은 아닐까?”
 “….”
 내가 딱히 대답을 내놓지 못하자 다시 대화가 끊겼다. 나와 종현이는 소주를 두 병 더 마신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포차를 나서다 종현이가 넘어질 뻔했다. 종현이는 술이 취한게 아니라 발을 헛디뎌서 그렇다고 했다. 그리고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진광아! 혹시 내 전화기도 꺼져 있으면 한번 살펴봐라!”
 “야! 무슨 그런 말을 하냐? 살만한 놈들이 진짜 배가 불러서….”
 종현이는 술이 취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이미 걷는 모습은 술기운을 숨길 수 없었다. 앞서가던 종현이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진광아,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영호놈 먼저 간 게 나는 왜 이해가 되는지 모르겠다.”
 나는 종현이가 서 있는 쪽으로 발길질을 하며 말했다.
 “미친 새끼들, 그래 다 뒤져버려라. 나도 뭐 이깟 세상 별 미련없다!”
 종현이는 나에게 다가와 목을 조르며 말했다.
 “씨발, 그래, 영호새끼 따라서 다 죽자! 죽어!”
 종현이는 내 목을 조르고 흔들다 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울음이 섞인 목소리였다.
 “진광아, 나 진짜 열심히 살아왔거든, 고졸이라고 무시 안당하려고 바둥거렸고, 이 자리에 오기까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했거든, 근데 왜 아무것도 아닌 것 같냐.”
 나는 종현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종현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갑자기 왜이래 임마! 너 열심히 산 거 다 알아.”
 종현이 숙였던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빨갛게 충혈된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알아? 다 안다고? 누가?”
 나는 그저 말없이 종현이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그냥 겉모습만 그럴싸한거지. 속은 다 썩은거야. 나도, 영호도.”
 “….”
 종현이는 다시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어깨가 들썩였다. 크게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흐느껴 울고 있었다. 나도 종현이 옆에 주저앉아 웅크린 등을 토닥였다. 울지 말라는 말은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등을 토닥여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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