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찬은의 하찮은 이야기]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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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찬은의 하찮은 이야기]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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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2.31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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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하찬은(필명)씨의 소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가 매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작가 하찬은(필명)
작가 하찬은(필명)

영호의 죽음 때문이었을까. 나는 불현듯 기억 속에서 이미 지워졌다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어린 시절 주위 사람들로부터 의젓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저 마음껏 웃는게 죄를 짓는 것 같아 말이 없었을 뿐인데 사람들 눈에는 그것이 어른스러워 보였던 모양이다.
 내가 여섯 살이 될 때까지 나와 누나 사이에는 나 보다 두 살 많은 형이 있었다. 형이 지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우리 집은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화목하고 행복했다. 하지만 형의 장애는 한순간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부모님은 형이 지적장애 판정을 받던 날 큰 충격을 받았다. 어머니는 형의 장애 사실을 거부했다.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형의 장애는 어머니에게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일이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어머니는 스스로의 잘못으로 형이 장애를 가지게 됐다고 자책했다. 그렇게 고통의 시간은 길고 길었다. 긴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어머니는 어느 순간부터 형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우리 집은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영업용 택시기사였다. 나와 형을 보살피는 일은 누나의 몫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형에 대한 집착은 누나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일이었다. 형이 울거나 떼를 쓰는 날에는 어머니는 모든 책임을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는 처음에는 자신이 왜 혼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어머니의 타박을 견뎌냈지만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누나도 어머니의 질타를 호락호락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와 형을 보살피는 일도 소홀해지기 시작했다. 열심히 보살펴봐야 결국 혼나는 일만 생긴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누나의 보살핌이 점점 마음에 들지 않았던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시장 한 귀퉁이에 분식집을 내고 함께 장사를 시작했다. 누나의 보살핌이 소홀해지고 나까지 학교를 가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놀 사람이 없어진 형이 나를 찾겠다고 사라지는 일이 종종 발생했기 때문이다.  
 형이 영원히 사라진 날도 아마 나를 찾으러 나갔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날 아버지는 갑작스러운 친구의 사망 소식에 급히 장례식장에 갔고, 어머니도 그날따라 몰려드는 손님에 정신이 없어 형이 나가는 것을 보지 못했다. 누나는 친구집에 가고 없었다. 
 형이 사라지고, 아슬아슬하던 균열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렸다. 경찰도 처음에는 열심히 형을 찾는 것 같았지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반년이 지나자 무덤덤해지는 것 같았다. 경찰은 연락이 없으니 적어도 사망한 것 같지는 않다는 말로 위로했지만 그것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는 눈에 띄게 말라갔고, 어머니는 정말로 조금씩 실성해 가는 것만 같았다. 집에는 더 이상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보다 말소리 자체가 줄어들었다. 그렇게 2년이 넘도록 형을 찾아다니던 어느 날,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진혁이 어머니시죠? 여기 경찰서입니다.”
 “……네.”
 어머니는 경찰서라는 말에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가까스로 대답했다.
 “잠깐, 경찰서에 들려서 확인 좀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열다섯 살 가량의 지적장애를 가진 남자아이가…….”
 어머니는 경찰의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전화를 끊고 경찰서로 향했다. 그렇게 나간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나와 누나는 늦도록 부모님을 기다리다 잠이 들었다. 인기척에 언뜻 잠에서 깬 것 같았는데 조용하게 말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 귓가를 맴돌았다. 하지만 나는 곧 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진광아!
 형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어린 시절 형의 모습이 아니라 조금은 다른 모습이었지만 분명히 형이었다. 하지만 아프던 형이 아니었다. 말도 어눌하지 않았고, 실없는 웃음도 없었다. 편안해 보이는 형은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형 때문에 다들 고생이 많지. 미안해. 그리고 형은 잘 지내고 있으니까, 엄마, 아빠도 이제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행복하게 지내시라고 전해줘.
 분명 형이었다. 꿈이었지만 너무 선명했다. 이상하게 그날 이후 부모님은 더 이상 형에 대해 어떤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나도 누나도 부모님에게 더 이상 형에 대해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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