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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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를 읽고
  • 전우용 기자
  • 승인 2020.12.20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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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번방을 세상에 알린 여대생 2인이 추적기
- 조선일보 신현종 기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성의 몸 위로 꿈틀꿈틀 벌레들이 기어 다닌다. 몸서리쳐지는 악몽이라면 차라리 나을 텐데 눈앞에 펼쳐지는 이 영상은 실제다.

온 몸의 돌기가 서고 속에서는 구역질이 올라온다. 차마 더 이상은 보기 힘들어 눈을 감는다.

이것은 N번방을 취재해서 세상에 알린 여대생의 경험이다. 속칭 '노예'로 불리는 모니터 속 여성의 이 끔찍한 잔상은 오래도록 그녀를 괴롭혔다. 영상을 본 후 하루는 밥도 넘어가지 않았다. 죽기 전에는 이 영상을 머리속에서 지우는 것 조차 불가능 해 보였다. 이렇게 매일을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역거움과 증오를 느끼며, 혹은 가해자들을 진심으로 죽이고 싶다고 생각하며 힘든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렇게 그녀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 속에, 1년 넘게 잠입취재를 하며 세상에 N번방의 존재를 알렸다.

신현종 조선일보기자
신현종 조선일보기자

N번방을 우리에게 알려 준 건 여대생 2명이었다. 기자를 꿈꾸는 한 학번 차이의 선후배 2명은 뉴스통신진흥회의 탐사 심층 르뽀 취재물 공모전에 도전하기로 했다. 취재 주제는 '불법촬영물'로 잡았다. 그 불법촬영물의 유통경로를 쫓던 중 '와치맨'의 AV-SNOOP이라는 구글 블로그를 발견했고 그가 정리해놓은 N번방 후기 글을 접했다. 이미지 없는 단순 게시글인데도 조회수가 블로그 내에서 가장 높았다.

'갓갓'이라는 닉네임을 가진자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학대를 일삼고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일명 '노예 영상'이 모바일 메신저인 텔레그램에서 공유되고 있다고 했다. AV-SNOOP 블로그 상단에 '고담방'이라는 텔레그램 대화방으로 가는 링크가 올라와 있었다. 그녀들은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 확인해야 했고 그 링크를 타고 간 순간, 지옥의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그녀들은 먼저 텔레그램에 가입한 다음 고담방에 입장했다. 놀랍게도 성인인증 같은 입장 조건은 전혀 없었다. 고담방의 방장은 AV-SNOOP 블로그 운영자인 '와치맨'이었고, 그는 방의 참여자들에게 '형님'으로 불렸다.

『아무런 위험부담 없이 고담방에 들어가자 맨 먼저 '공지'가 눈에 띄였다. 1번부터 8번까지 대화방이 있는데, 그 방에서만 볼 수 있다는 영상에 대한 품평과 영상 속 여성의 신상 정보가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번호가 매겨진 여덟 개의 대화방에서는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고담방에만 이미 1000명에 이르는 익명의 텔레그램 회원들이 들어와 있었다. 이들은 온갖 불법촬영물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여성을 인간이 아닌 한낱 상품으로 취급하고 대화를 쉬지 않고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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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N번방'이었다. 와치맨은 N번방에 있다는 여성의 이름, 학교, 반, 평가를 주기적으로 올리며 참여자들의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소위 'N번방 회원'들은 주로 고담방에서 N번방에 있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품평회를 열었다. "00이 학교 찾아가자"는 식으로 강간을 모의하기도 했다. 고담방은 입장이 까다롭지 않기 때문에 불법촬영물이 올라가 누군가 이를 신고한다면 방이 폭파될 우려가 있었다. 그렇게 되면 N번방으로 가는 첫번째 통로가 막히기 때문에, 와치맨은 고담방에 성착취물이나 불법촬영물이 올라오면 곧바로 삭제하고 올린 사람을 강제 퇴장시키는 등 초 단위로 철저히 관리했다.

고담방에서 N번방과 연결되는 링크를 바로 받을 수는 없었다. 먼저 고담방에서 파생된 대화방에 입장해야 하는데 파생방으로 가는 링크는 불시에 올라왔다. 취재를 시작하고 하루 만에 알게 된 '파생방'만 20개가 넘었다. 』

이렇게 고담방의 방장 와치맨은 N번방으로 가는 통로인 고담방이 폭파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며 접속한 사람들을 파생방으로 안내했다. 파생방의 방장들은 "몰카 올리면 N번방 링크 줌" "희귀 야동 올리면 N번방 준다"같은 말을 흘리며 N번방으로 가는 통로를 열어주었다. N번방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자신도 불법 동영상을 올리며 불법에 직접 가담해야 했기에, N번방에 입장하는 사람들의 안전성을 담보 받을 수 있었다.

『N번방에 입장과 동시에 눈에 들어 온 것은 어린 아이들의 나체였다. 고담방과 파생방 회원들이 수없이 말하던 노예였다. 대부분 중학생 혹은 초등학생으로 보였다. 아이들은 도구를 이용해 자위하는 행위는 기본이고 칼로 몸에 '노예'라고 새기거나 , 공중 화장실이나 야외 공간 등을 나체로 활보하기도 했다.

영상을 본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게 정말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인가......? 지금 우리나라에서, 우리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이들이 벌이는 것인가......?』

텔레그램에서 암약하는 가해자들은 텔레그램에서의 어떤 활동도 결코 잡히지 않는 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 굳은 확신이 그들의 행동을 더욱 대담하게 했고 텔레그램 대화방은 범죄의 소굴이 되어갔다.

그런데 노예들은 왜 꼼짝없이 당하고만 있었을까.

『아이들이 노예로 전락하는 과정은 갓갓의 입을 통해 전해졌고 와치맨이 이를 널리 알렸다. 설명을 종합해보면 범행은 주로 트위터에서 이뤄졌다. 상대적으로 수위가 높은 게시물을 올린 미성년자를 선별한 뒤 메시지를 발송했다. 경찰을 사칭하면서 겁을 주는 방식이다. 갓갓은 ‘게시물 신고가 접수됐으니 보내준 링크에 신상정보를 입력하고 조사에 응하라’고 제안했고 ‘아니면 부모님에게 연락하겠다’는 협박을 덧붙였다.

이들이 신상정보를 내놓으면 그 때부터는 지옥이 시작됐다.』

- 국민일보 'N번방추적기' 중에서-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때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때

성착취를 당하는 노예가 자신이 범죄의 희생양이 되었음을 알리기는 쉽지 않았다. 자신의 나체, 자위행위, 그리고 단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을 온갖 성 행위를 스스로 자행하는 자신의 동영상을 누구에겐가 보여준다는 것은 사회에서 자신을 영원히 도려내는 것 같은 공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각 지방 경찰서에 신고한 피해자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경찰서에서 텔레그램 범죄는 영장발부도 안 된데요. 가해자를 못 잡는데요......"

잡지도 못하는 가해자. 도무지 이들을 어떻게 단죄 할 수 있을까? 취재를 하던 여대생 '불'과 '단'은 자신들을 '추적단 불꽃'이라 부르며 N번방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반드시 그 죄를 물을거라 다짐한다. 오랜 시간 잠입 취재로 얻은 수 많은 자료는 N번방의 불법성과 잔인성을 알리기에 충분했고, 드디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경찰은 텔레그램 수사에 착수한다.

2019년 11월 초, 한겨레신문에 갓갓의 N번방을 모방해서 만든 '박사방'의 운영자 조주빈과 관련한 연재기사가 났다. '추적단 불꽃'은 한겨레 신문보도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킬 줄 알았다. 알음알음 알려지긴 했지만 기사의 파장은 크지 않았고 해당 기자들은 말할 수 없는 수모를 당했다. 텔레그램 대화방에서는 N번방을 보도한 한겨레 기자들의 신상을 파악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기자 가족들의 정보를 구해오면 '레어' 영상을 주거나, 유료방에 초대하겠다는 약속이 이어졌다. N번방을 추적한 그녀들이 실명을 밝히지 못하고 '추적단 불꽃'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겨레 보도 며칠 후 '불꽃'은 세명의 피해자를 추가로 확인했다. 가해자들에게 기사의 압력 따위는 먹히지 않았다. 텔레그램 범죄는 잡을 수 없다는 그들의 믿음은 바위보다도 굳건했다.

N번방에 입장하고 5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경찰에 N번방의 존재를 알리고 수사가 시작 되었지만 텔레그램 속의 세상은 변한게 없었다. 점점 텔레그램 대화방에 입장하는 것 자체가 그녀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허탈감과 무력감이 찾아왔다. 그렇다고 N번방에 대한 감시를 멈출 수도 없었다.

그 와중에도 N번방 방장 조주빈은 성착취 횟수에 다라 10~100만원에 이르는 유로 대화방 입장권을 팔고 있었다. 입장권은 암호화 화폐인 '모네로'로만 구입할 수 있었다.

추적단 불꽃은 움츠러 들었다. 경찰에 협조한 지 수개월, 텔레그램에서는 여전히 성착취가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그녀들은 생각했다. '도대체 이 싸움의 끝은 어디인가, 끝이 있기는 한걸까......'라는.

시간은 더디게 흘렀고 그럼에도 그 더딘 시간 속에 N번방은 천천히 조금씩 세상에 알려졌다.

"어린 여자 아이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다. 강력한 여성으로 변해 당신의 세계를 박살내러 돌아 온다"

미국 체조 국가대표팀의 주치의로 일하면서 30년 동안 332명이 넘는 여자 선수에게 성폭력을 저지른 '래리 나사르'에게 법정에서 피해자가 한 말이다. 그렇다고 성착취 범죄자들에게 피해자가 강력한 여성으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말한다. “처벌 수위를 높여 경각심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신고를 하면 그들은 분명 겁을 먹는다. 장담한다”고도 말했다.

N번방에 관한 기사를 접하고, 'N번방 추적기'를 읽고, 그들의 잠입 취재일지를 읽으며 드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다시는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피해자도 가해자도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의 간절한 바람에도 가해자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강력한 처벌로 그들을 엄벌해야 한다. 이 교수의 말처럼 범죄자는 자신이 처벌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낀다. 강한 두려움만이 자신의 그릇된 욕망과 행동을 제어 할 수 있다. 강력한, 아주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디지털 성범죄가 현실의 성범죄보다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님을 우리 모두가 인지해야 한다. N번방에 가담한 범죄자가 이토록이나 많은 것은 텔레그램 범죄는 처벌 받지 않는 다는 그릇된 믿음 때문이었다. 범죄의 영역이 디지털이라고 그 죄가 가벼울 수는 없다.

그리고 성범죄에 관한 한 '함정수사'의 기법도 허용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여중생 성매매' 게시글을 올린 뒤 이에 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실제가 아닌 잠재적 범죄자를 잡기 위한 경찰의 도구라 해도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

'의제강간' 연령 상향 필요성도 많은 관계자들이 지적하는 부분이다. '의제강간'이란 성관계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만 13세 미만 아동과 성행위를 할 경우 처벌하는 조항이다. 이수정 교수는 의제강간 연령을 16세 이상으로 높일 것을 제안했다. 피해자가 그 범주에 든다면 합의가 이뤄졌든 자진했든 가해자를 엄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성년일 경우의 가중처벌은 성범죄로 부터 아이들을 지키는 중요한 방어막이 된다.

피해자도 바뀌어야 한다. 만에 하나 뜻하지 않게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가 됐더라도 그저 숨기만 해서는 않된다. 이교수는 그들에게 말한다.

“당신들에게는 싸울 준비가 된 우리가 있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에.”

그래도 한가지 희망적인 것은 피해자를 돕기 위해 밤낮 없이 애쓰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추적단 불꽃은 텔레그램 가해자들이 무척이나 부지런한 사람들임을 강조했다. 자신들의 그릇된 욕구 충족을 위해서지만 그들은 참으로 부지런 했다. 부지런한 그들의 범죄행각을 밝히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을 희생해가며 부지런히 노력하고 있다.

N번방 잠입 취재기의 제목이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인것은,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우리'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싶은 추적단 불꽃의 소망을 담은 말이다. 어린 소녀들을 성착취 노예로 만들고, 그들에게 성적 가학을 일삼는 범죄자들을 '우리'라고 부를 수는 없다. 누구라도 할 수 있지만 그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던 그녀들의 고통스런 시간들은, 우리 모두의 자양분이 됐다.

추적단 불꽃은 자신들을 '저널리스트'가 아닌 '아웃리처 (Outreacher, 지역 주민에 대한 사회기관의 적극적인 원조나 지원 활동)'로 소개했다. 책을 읽는 내내 우리에게 '추적단 불꽃'같은 아웃리처가 있다는 것이 너무도 감사했다. 그들에게 마음 속 깊은 찬사와 존경을 보낸다.

그래서 책에 대한 아쉬움도 있다. 디지털 성범죄, 그리고 아웃리처의 활동상이 궁금해 책을 산 독자에게 지나치게 자신의 개인사를 서술해 놓은 중간 단락은 책의 방향성을 어지럽게 했다. 저자 개인의 페미적 성향을 밝히는 것도 책의 결론에 어떤 편견을 주지 않을까 염려 됐다. 디지털 성범죄의 대처에 개인적 성향은 중요하지 않다. 답은 정해져 있다. 디지털 성범죄에서 피해자도 잘못이 있지 않을까 논의하는 것이 디지털 성범죄를 대하는 가장 큰 오류라면, 저자 역시 자신의 페미적 성향을 밝히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부분 이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편집의 기획방향이 아쉬웠다.

책을 끝내는 말미에 적은 후기도 씁쓸했다.

『3부를 쓰는 지금, 마지막 송고를 앞두고 있다. 그동안에도 정말 많은 일이 일어났다. 위력형 성범죄가 반복되고, 웰컴 투 비디오 손정우의 미국 송환이 거부되고, 고등학교 교사가 불법촬영을 저질렀다. 한국 여성으로 살아 가는게 버겁게 느껴지는 일주일도 있었다.』

추적단 불꽃의 책을 읽고 몹시 마음이 뜨거워진 것은 우리에게 당신들과 같은 아웃리처가 있기 때문이다. 추척단불꽃이 있어 내게 세상은 더 살만한 곳이 됐다. 그런데 불꽃이 한국 여성으로 사는 게 버겁다고 하면 기운이 빠진다. 이런식의 결론은 피해자의 싸울 의지를 앗아가 버린다. 모든 것이 현재의 법의 테두리나 제도 안에서만 의미가 있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제도가 미약해도 법의 헛점이 있어도 우리는 싸워야 한다.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우리'를 바라보고 힘을 얻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힘들겠지만 우리의 든든한 아웃리처가 되어 달라고 염치없는 응원을 보내본다.

전우용 기자 yongds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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