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하찬은(필명)씨의 소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가 매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작가 하찬은(필명)
작가 하찬은(필명)

 마 부장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대리로 승진한 뒤 얼마 되지 않은 겨울이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겨울비가 장맛비처럼 쏟아졌다. 월세를 조금이라도 줄여보겠다고 회사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사를 간 뒤부터 나는 매일 긴장 속에 아침을 맞이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늦잠을 자는 날은 어김없이 전쟁을 치러야했다. 
 그날도 늦잠을 잔 덕에 우산도 챙기지 못한 채 버스 정류장으로 뛰었다. 날씨가 춥고 비도 많이 오지 않아 곧 그치려니 했다. 아니면 눈으로 바뀌겠지 싶었다. 다행히 버스를 타고 오는 동안 비가 잦아드나 싶었는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거세게 쏟아졌다. 회사 현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온 몸이 비에 흠뻑 젖은 상태였다. 시계를 보니 다행히 지각은 아니었다. 현관 앞에서 젖은 옷을 털고 있는데 누군가 빗줄기 속에 고개를 푹 숙이고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마 부장이었다. 내가 옆으로 비켜서려는 순간 마 부장이 미끄러지면서 나와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마 부장의 가방이 떨어지면서 각종 서류들이 쏟아져 나왔다. 넘어진 마 부장은 급하게 일어나 서류들을 아무렇게나 가방에 쑤셔 넣고 ‘미안합니다. 회의에 늦어서’라며 다시 뛰기 시작했다. 
 나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멍하니 서 있다가 마 부장이 흘린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돌아서서 마 부장을 부르려 했지만 마 부장은 이미 비상구를 통해 사라진 뒤였다. 나는 무심코 마 부장이 흘리고 간 종이를 보았다.  원고였다. 나의 무료한 일상을 달래주는 비타민 ‘큰형님’. 
 나는 놀란 마음에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본 내용과 똑같았다. 나는 마 부장이 그 유튜버가 아닐까 생각했다.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보름이 넘도록 마 부장의 주변을 맴돌았다. 나의 행동이 이상했는지 어느 날 마 부장이 먼저 말을 붙였다. 디자인부를 기웃거리고 있을 때였다.
 “윤진광씨?”
 뒤를 돌아보니 마 부장이었다.
 “왜 들어가지 않고, 누구 찾아요?”
 나는 도둑질을 하다가 걸린 사람처럼 안절부절 못했다. 마 부장은 그런 내 모습이 이상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등을 돌렸다. 나는 순간, 이 기회를 놓치면 안될 것 같은 생각에 용기를 내어 마 부장의 팔을 잡고 말했다.   
 “마 부장님. 오늘 술한 잔 사주시면 안될까요?”
 “그……그럽시다.”
 마 부장은 나를 이상한 사람 대하듯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 부장과의 첫 술자리는 그렇게 마련됐다. 나는 술이 몇 잔 오고간 뒤 말을 꺼냈다. 마 부장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몹시 궁금했다.
 “저……, 부장님. 요즘 굉장히 핫한 유튜브가 있는데요. 혹시 ‘큰형님’이라고 들어보셨어요?”
 마 부장은 그다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잘 알죠. 유명하잖아요.”
 “그럼 혹시……?”
 마 부장은 내가 놀라는 모습에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아, 진광씨 내가 그 유튜버인줄 알았구나. 하하하. 아니에요.”
 나는 의아한 눈빛으로 마 부장이 흘린 종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제야 마 부장은 어떤 상황인지 알아채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 이거 참 곤란한데. 뭐 보셨다니까 할 수 없네요. 그래도 어디 가서 절대 얘기하면 안됩니다. 그 컨셉이 신비주의거든요. 누군지 노출되면 그 프로 접어야 되니까.”
 내가 알았다고 대답하자 마 부장이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제가 관여가 돼 있긴 한데, 영상 속 주인공은 제 친구예요.”
 나는 놀란 표정으로 마 부장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말도 참 잘하고 성격도 좋은 친군데 다운증후군이라는 장애 때문에 절망 속에 살던 친구죠. 아마 유튜브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요. 처음부터 얼굴을 가렸던 것도 일단 편견에서 벗어나려는 이유가 가장 컸죠. 사람들이 편견 없이 자기를 봐 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하여튼 원고 만드는 일을 내가 도와주고 있어요. 아르바이트 삼아서. 그 친구 돈을 많이 벌거든요.”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 부장은 내 앞의 빈 잔에 술을 부어주며 말했다.
 “얼마 전에 그 친구가 나보고 유튜브를 시작해 보라고 권하더군요. 방송을 하다보면 외롭지 않다고. 와이프하고 아이가 없으니까 불쌍해 보였나봐요. 친구한테는 됐다고 했는데, 최근에는 한 번 해볼까하는 생각이 들긴 했어요. 진광씨가 주웠다는 그 원고는 그 친구가 예전에 했던 내용이구요.”
 나와 마 부장은 그날 밤 늦도록 술잔을 주고받았다. 마 부장은 술이 취하자 동생처럼 대하겠다고 했고 나는 웃으며 좋다고 했다. 마 부장은 기분 좋게 웃으며 나의 첫 인상에 대해 말해주었다.
 “진광이 너는 나이보다 참 의젓한 것 같아. 항상 예의바르고. 나는 너의 그런 첫 인상이 좋더라.”
 그날 이후 나는 마 부장과 자주 술잔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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