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터뷰] "인간 관계에서 찾는 시적 성찰로서의 고백" 홍인숙 시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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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터뷰] "인간 관계에서 찾는 시적 성찰로서의 고백" 홍인숙 시인을 만나다
  • 송영두 기자
  • 승인 2020.12.06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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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북은 매주 문인들을 만나 그들이 가진 독특한 창작 세계를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소소하면서 진지한 대담 속에서 그들의 눈으로 본 세상을 뉴스앤북이 독자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 뉴스앤북과 함께 분야와 지역을 넘어 다양한 책과 사람들을 만나보세요. 

홍인숙 시인
홍인숙 시인

어느덧 2021년을 앞두고 있는 12월의 어느 날 뉴스앤북이 홍인숙 시인을 만났다.

생동감과 넘치는 에너지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홍 시인은 ‘활력’ 그 자체다.

그는 간결한 호흡이 돋보이는 다채로운 언어들로 자신의 지나왔던 삶을 되새긴다.

사뿐히 내려앉은 아름다운 눈송이처럼 소박한 매력을 지닌 홍인숙 시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Q.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A. 안녕하세요. 저는 홍인숙 시인입니다. 인천 부평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서울에서 보냈어요.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국문학을 공부했고 대전대학교 대학원에서 문예창작학을 전공했죠. 30대부터 대전에 터를 잡아 시를 쓰고 있습니다.

Q. 학창시절부터 문학에 대한 생각이 깊었겠네요.

A. 초등학교 백일장에서 상을 탔던 기억의 씨앗이 오랜 세월동안 마음속에 담겨있었어요. 그것이 성장해 푸른 싹이 자라났죠. 지금의 저는 어렸을 때부터 품고 있던 꿈의 실현입니다. 유년의 어떤 기억들은 때로는 삶의 고단함을 견디게 해주는 ‘유리병에 띄운 편지’ 같단 생각으로 마음속의 작은 아이와 만나며 살고 있어요.

Q. 어린 시절부터 문학인을 꿈꿔왔는데 등단은 꽤 늦은 나이에 했잖아요. 이유가 있나요?

A.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단 막연한 생각을 하며 추억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하지만 나이가 들고 문학과 관계없는 직장생활을 하며 전혀 다른 길로 빠졌죠. 제 글은 저만 볼 수 있도록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나도 시에 대한 꿈이 있었지’란 생각이 들었고 지난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를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제 생각이 활자화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죠. 하지만 천천히 하더라도 제대로 해보자란 마음을 가지고 등단했습니다.

Q. 시의 재료가 다가오는 시인님만의 특별한 시점이 있나요?

A. 가끔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오거나 외롭단 생각이 들면 불현듯 뭔가 써야겠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곤 해요. 그럴 때면 혼자만의 공간에서 누구에게도 표현할 수 없는 내 안의 깊은 우울을 향해 말을 걸어보죠. 그럴 때 툭 튀어나오는 언어들이 나를 위로해주기도 하면서 가느다란 울음의 끝이 시가 되곤 합니다.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같이 울고 싶은 마음들이 요동할 때면 그런 감정들이 저와 섞여 시로 나올 때도 있어요. 자연 보다는 주로 사람에 대한 관심, 관찰을 통해 시가 다가오죠.

Q. 사람에 대한 관찰에서 시가 다가온다고요?

A. 사람마다 마음이 쓰이는 대상이 모두 다릅니다. 자연스럽게 더 애정이 가고 끌리는 것이 있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화분이 있으면 다른 사람은 예쁜 꽃에 눈길을 주겠죠. 하지만 저는 화분보다 그 옆에 있는 사람에게 시선이 더 갑니다. 타인에 대한 관심이 감각적으로 더 많이 가는 것 같아요.

Q. 지난 2013년 ‘시와 소금’으로 등단하신 뒤 글을 써오고 계신데 시인님 삶에서 시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A. 시는 저에게 시는 내 자신을 일깨워주고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스승 같은 존재입니다. 삶 속에서 어떤 정서를 포착해 다채로운 무늬로 그려내는 것이 문학이에요. 그것으로 무언가를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게 한다는 선배 문인의 말처럼 시를 통해 자기를 발견하고 마음의 행로를 짚는 일은 다음 발걸음을 재어보게 만드는 공부라고 느끼죠. 자기를 발견한 사람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Q. 등단 후 약 6년이란 시간 뒤에 ‘딸꾹, 참고서’를 출간하셨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가 있다면?

A. 저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에요. 더디다기보다는 잘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죠. 오랜 세월을 돌아 나와서 시를 다시 만나게 되고 글을 공부하면서 등단에 대한 관심보다는 나 자신에 대한 확인이 더 많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저 세월 속에 게을렀던 거죠.

Q. 등단 후 오랜 시간 뒤에 첫 시집을 만났을 당시의 기분은 어땠나요?

A. 누구나 첫 시집은 자식같이 애틋합니다. 늘 매만지고 항상 함께한 작품들이여서 한편 한편이 모두 익숙했어요. 그런 시들을 시집에 넣는 작업을 하며 행복한 마음이었죠. ‘딸꾹, 참고서’는 제 인생사에요. 저의 모든 역사가 단편적으로 들어있기 때문이죠. 굉장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Q. 첫 시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A. 대학교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던 ‘흔해 빠진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죠. 제가 어린 시절 다쳤던 경험이 있었는데 그 후유증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시간이지나 신체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을 우연히 알게 됐고 그것을 시로 만들었어요. 이 시를 통해 타인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치료의 글을 써야겠단 생각을 들게 한 시에요.

Q. 황정산 문학평론가의 ‘딸꾹, 참고서’ 시집에 대해 ‘시의 도발성’을 언급하셨는데 시인님이 생각하는 도발성은 뭔가요?

A. 저도 도발성이란 것에 대한 의아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평론가들은 시인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내면을 바라보니 어쩌면 제 안에 내재한 불온함을 눈치 챈 게 아닐까요? 언제나 일탈을 꿈꾸면서도 현실에 발을 디디며 사는 게 인간의 일상성이라면 시인은 그 일상성을 탈주하고 싶은 욕망을 시 속에 넣어놓는 존재들이기 때문이죠. 도발성은 아마도 제 안에 잠재된 폭발력을 표현해준 것 같습니다. 제 안에도 활활 불태우고 싶은 휴화산이 있는지 모를 일이죠.

Q. 시집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나요?

A. 바로 위로입니다. ‘나도 너처럼 많이 아팠어, 너처럼 많이 힘들었어, 세상을 버리고도 싶었어, 사랑 때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던 어둠도 있었어, 지워버리고 싶은 수치스러운 순간도 있었어, 그래, 그래도 괜찮아, 지금 우린 있는 그대로 여기 이렇게 존재하잖아, 다 괜찮아진다니까, 지나와보니 어느새 여기더라고, 잘 왔어’ 란 말을 같이 나누고 싶은 마음이죠.
 

Q. 시를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A. 독자와 소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독자가 외면하는 시는 오랜 세월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문학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그 시대를 관통하는 주제와 표현 양식에 탁월한 작품이 영향력을 발휘했고 후세에 남았죠. 그렇듯 사이버 공간이 아무리 발달하고 다변화한 현대 사회라 할지라도 사람의 정서, 감정은 시대를 초월한 본성에 기인하기에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작품이 가장 생명력 있는 문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문학은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무늬를 그려내는 언어의 조합이니까요. 제 자신과 소통하고 독자와도 마음을 나누는 시의 집이 되기를 바라며 살아온 이야기를 한 수 한 수 펼쳐보았습니다.

Q. 현재 대전대학교,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는데 교직생활이 문인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A. 20대 풋풋한 청년들과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온 중년층 이상의 학생들을 만나며 제 청춘을 다시 되살려요. 그것을 통해 현재의 나, 미래의 나를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을 경험하죠. 문학적 자질이 뛰어난 학생들을 만나면 그 재능을 더 키울 수 있도록 격려하며 저도 자극을 받습니다. 또 뒤늦게 문학의 길을 걷고자 하는 학생에게는 저의 작은 경험을 나눠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길을 걷고 있는 일상이 늘 설레는 맘이죠.

Q. 오는 12월 문화예술 부문 대전광역시장상을 받으신다고 들었는데?

A. 저는 한국문인협회 대전광역시지회에서 시 분과 이사를 역임하고 있는데 올해 여름 에 대전문학 연구총서 공동 집필진으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대전의 훌륭한 시인의 한 분인 박용래 시인의 40주기가 되는 해이기도 해서 관련 평론을 한 편 썼어요. 문화예술 부문 대전광역시장상은 소속 문학단체에서 추천하는 문인에게 주는 공로상으로 알고 있죠. 12월 10일에 시상식 예정인데 코로나 때문에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특별히 큰 기여를 한 건 없는 것 같지만 더 열심히 봉사하란 뜻 같아요.

Q. 박용래 시인의 40주기를 애도하는 평론을 쓰면서 기억에 남았던 일이 있나요?

A. 평론을 쓰던 중 박용래 시인이 생전에 거주하던 오류동 옛집 터를 둘러보았는데, 현재 중구청에서 운영하는 공영주차장이 됐어요. 지금은 시인의 흔적이라야 작은 표석 하나가 남아있지만 그마저 후미진 구석에 덩그러니 놓인 게 너무 안타까웠죠. 앞으로도 박 시인을 재조명 할 수 있는 기회가 시인의 옛집 터를 중심으로 확장되어서 지역의 문화발전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대전의 문화적 위상이 높아지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꾸준히 문을 두드려보고 싶습니다.

Q. 대전의 문화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A. 저는 대전, 공주, 부여, 논산 등지의 인근 지역에 있는 문인을 찾아 문학기행을 가곤 하는데, 앞으로 대전에도 박용래 시인을 찾아 문학기행을 올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역 발전에도 의미가 있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대전은 정훈, 임강빈, 한성기 시인 등 훌륭한 시인들이 많이 배출됐죠.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함께 꿈을 실현해 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Q. 시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A. 아름다움의 이면에는 추함도 있다는 것, 삶은 언제나 모순에 가득 차 있는 예측불허의 움직임이라는 것, 그래서 언제나 내 앞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낼 수밖에 없는 게 우리가 해야 할 몫이라는 말을 시 속에 담아보고 싶어요. ‘나와 같은 사람이 여기에도 있구나.’란 공감을 통해 잠시나마 쉼을 주고 싶죠.

Q. 앞으로의 작품 활동 계획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A. 얼마 전에 소꿉친구들과 만날 수 있는 자리가 있었어요. 동인지를 한 권씩 선물하며 친구를 마음에 두고 쓴 시를 같이 만난 자리에서 읽자 친구가 눈물을 흘리며 들었죠. 가끔 제 시를 읽으며 저도 눈시울을 붉히곤 합니다. 그러고 나면 마음이 고즈넉해지는 느낌을 가지곤 해요. 눈물은 사람의 영혼을 씻어주는 치료제, 시인을 곡비, 대신 울어주는 존재라고도 한다죠.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위로받을 수 있는 시, 잠시라도 자신의 영혼을 쉬게 하는 한 방울의 정화수 같은 시, 그런 시를 꼭 세상에 보여주고 싶습니다.

Q. 두 번째 시집을 준비하는 시인님의 각오가 궁금합니다.

A. 다음 시집은 첫 시집보다 좀더 이른 시간 안에 선보이고 싶습니다. 첫 시집이 내 안의 울음 같은 존재였다면 두 번째 시집은 함께 울고 웃는 이야기 같은 시를 써보고 싶어요. 다 못한 이야기는 수필을 통해서 만나보고도 싶죠. 혼자서 독백하듯 써오던 시의 집에서 나와 다양한 자리에서 독자와 함께 공유하는 행복한 만남의 집을 많이 지어보고 싶습니다. 격려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Q. 추천해주고 싶은 시인, 작가가 있다면?

A. 윤월로 시인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우연히 문학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윤 시인은 ‘시와 사람이 참 알맞은 옷을 입고 있구나’란 생각을 하게 들게 했죠. 최근 시집 ‘느티빛 옷을 입다’를 출간했습니다. 인생의 후반기를 아름답게 물들이는 문학 세계가 저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줬어요. 특히 대전여성문학회를 창립했는데 오랫동안 동인들 간에 창작 합평회를 통해 작품성을 높이는 일에도 열정을 아끼지 않는 등 늘 공부하는 분으로 알고 있죠. 윤월로 시인을 통해 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살아 숨 쉬는 이야기를 독자와 함께 들어보고 싶습니다.

Q. 이외에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자유롭게 남겨주세요.

A. 여러 일들을 되짚어보니 ‘지금의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한 것이 문학의 힘이었구나.’란 생각이 들어요. 어려서부터 제일 좋아하던 일이 독서였고 종이만 있으면 늘 뭔가 낙서를 하던 저의 습관이 어느새 나의 마음을 글로 표현하려는 욕구가 됐죠. 때문에 배우고 싶은 열망이 생겼고, 잠시 접어두고 살던 날 속에서 저를 다시 끄집어낸 것이 바로 시였습니다. 언제나 ‘나’를 사랑해준다면 그 무엇도 될 수 있는 ‘나’라고 아들딸 같은 청춘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요.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도 그 자리에서 조금씩 나아가면 분명 지나온 발자국이 남아있다는 것, 그래서 나아갈 길은 언제나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해주고 싶죠.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것이 암울해 보이는 현실이지만 분명 이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지혜로 한 발 나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될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모든 인류의 시대가 걸어온 것처럼, 서로 위로하며 잘 견뎌내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시인 프로필

홍인숙 시인은 인천 부평에서 태어났다.

대전대학교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한 뒤 현재 대전대학교와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지난 2013 계간지 ‘시와 소금’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뒤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독서치료학회 이사, 국제펜본부 대전광역시지회 사무국장, 한국문인협회 대전광역시지회 시 분과 이사, 대전문인총연합회 회원, 대전시인협회 회원, 쑥과마늘 문학회 동인, 목요문학회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는 대전문화재단 창작기금 수혜를 받은 ‘딸꾹, 참고서’가 있다.

송영두 기자와 홍 시인
송영두 기자와 홍 시인

 

송영두 기자 duden12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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