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김지영은 왜 아버지가 남동생에게 선물한 만년필을 갖고 싶어 했을까. 그런 욕망에도 긴 역사가 있다. 연필과 만년필, 임시적 존재에서 영구적 존재로의 욕망은 새로운 게 아니다. 툭하면 지워지고 대리되고 삭제되는 존재들에게 중첩되는 상처, 그러니까 그 영화는 그런 비가시적 존재들에게 몸을 빌려주고 상처에 대해 말하게 하는 이야기였다."

 

'아무튼 시리즈'는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세 출판사가 번갈아 만드는 '취향'에 관한 책들이다.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 본 사람은 없을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책들이 많다.

요조 작가의 '아무튼, 떡볶이', 김규림 작가의 '아무튼, 문구', 김혼비 작가의 '아무튼, 술' 외에도 '아무튼, 피트니스', '아무튼, 서재', '아무튼, 망원동' 등 한 가지 키워드로 작가가 매료된 키워드에 대한 이야기가 담겼다. 그들의 취향 또는 덕질을 볼 수 있는 책이다.

아무튼 시리즈 서른네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연필’이다. 비영리단체 발간 매체의 에디터와 기자로 오래 활동하며, 자기 서사 쓰기와 여성적 글쓰기 워크숍을 진행해온 김지승 작가의 첫 산문집으로, 연필에 얽힌 다양한 에피소드를 마치 공들여 깎은 연필심처럼 우아하면서도 예리한 사유로 풀어냈다.

1부 ‘연필’은 오랫동안 읽고 쓰는 삶을 살아온 그에게 연필이 남긴 무수히 많은 점선과 실선에 관한 이야기이다. 쓰고 지우고 그 흔적 위에 다시 힘주어 눌러쓴 생의 기록들이 연필 경도의 스펙트럼만큼이나 다채롭게 펼쳐진다. 2부 ‘연필들’에서는 버지니아 울프, 도로시 파커, 조이스 캐롤 오츠 등 그 이름만으로도 빛나는 여성 작가들의 작품과 삶이 연필을 매개로 새롭게 조명된다. 책 마지막에는 ‘나에게 맞는 연필 고르기’ ‘선호 경도 테스트’ 등 연필 덕후만이 알려줄 수 있는 정보들을 부록으로 실어 위대한 연필의 세계로의 입문을 돕는다.

-김지승의 '아무튼, 연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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