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찬은의 하찮은 이야기]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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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찬은의 하찮은 이야기]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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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2.04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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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하찬은(필명)씨의 소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가 매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작가 하찬은(필명)
작가 하찬은(필명)

마 부장은 평소와 다르게 술을 급하게 마셨다. 일부러 취하고 싶어 하는 듯 했다.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지만, 아무 일도 없다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주사까지 부리는 마 부장의 모습은 평상시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윤 대리, 아니 윤과장. 자네가 자주 간다는 술집 있지? 오늘 2차는 거기로 가자구.”
 “부장님. 많이 취하셨어요.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시고, 다음에 제가 한 번 모실게요.”
 “왜? 나 같은 놈은 국밥 한 그릇 시켜놓고 깍두기 국물에 소주나 마시는 게 어울린다 그건가?” 
 마 부장은 벗어놓은 재킷 안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져 오만원권 지폐 뭉치를 꺼내 테이블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이만하면 양주 한 병 정도는 마실 수 있지 않나?”
 마 부장이 테이블에 돈을 내리치는 바람에 아슬아슬하게 테이블 끝에 걸쳐 있던 소주병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져 깨졌다. 주인아주머니가 놀란 표정으로 빗자루를 들고 뛰어왔다.  
 “안 다쳤어요? 조심 좀 하지. 어째 오늘은 많이 자신다 싶드라. 아이고, 이건 또 뭔 돈이래? 보너스 좀 받으셨나? 그럼 얼른 마나님한테 가셔야지.”
 아주머니는 깨진 소주병 잔해를 쓸어 담으며 안쓰러운 듯 말했다.
 마 부장은 인심 좋은 얼굴로 아주머니를 보며 말했다.
 “하하, 아주머니. 우리 와이프는 애하고 미국에 있습니다. 미국.”
 아주머니는 마 부장의 말에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피했다. 나는 테이블과 바닥에 흩어진 돈을 모아 마 부장의 재킷 안주머니에 넣어주고 마 부장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마 부장의 한쪽 어깨를 들춰 메고 식당 밖으로 나왔다. 몇 분을 걸어 택시가 많이 다니는 큰 도로로 접어드는데 마 부장은 어깨를 빼내며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돈이 들어있는 주머니를 툭툭 치며 말했다. 
 “윤 과장. 나 오늘 죽고 싶은데 참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여기 있는 이 돈만큼만 마시자. 내 부탁 좀 들어주라 윤 과장.”
 마 부장은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듯 애원하며 나를 쳐다봤다. 안쓰러웠다. 나는 마 부장과 택시를 함께 탔다. 마 부장의 애처로운 눈빛을 끝까지 외면할 수 없었다. 내가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하자 마 부장은 그때서야 내 손을 꼭 잡으며 깊은 한숨과 함께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
 지난 몇 달 동안 마 부장은 밤낮없이 일했다. 디자인부 특성상 오후에 출근해도 됐지만 마 부장은 늘 외근 직원들의 출근 시간에 맞춰 나왔다. 얼마 전 의뢰받은 전기회사의 50주년 기념 책자를 제작하는 작업이 마감을 앞두고 있는 이유도 있었지만, 일감을 나눌 직원들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디자이너가 많을 때는 길어야 두어 시간 정도만 야근을 해도 될 일이었지만, 시도때도 없는 사장의 갑질에 몇 몇 직원들이 퇴사한 후에는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일거리가 쌓였다. 마 부장은 남은 직원들마저 그만 둘까 전전긍긍하며 웬만한 일은 혼자 해결하려 애썼다. 사장의 갑질은 밤낮이 없었고, 주말과 휴일을 가리지 않았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통에 작업은 한없이 더디기만 했다. 수정작업도 번번이 늦어졌다. 밤늦도록 수정작업을 하고 결재를 올리면 다음날 오후가 되어서야 응답이 왔다. 퇴근 후에 다시 불려나가 작업을 하는 일도 숱하게 많았다. 나는 힘들어하는 마 부장에게 가끔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사장 비위를 맞춰주니까 사장이 더 그러는 것 아니냐’고 말했지만 그럴 때마다 마 부장은 웃는 얼굴로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했다.
 “이 나이에 회사를 나가봐야 어디 갈 때도 없어. 그리고 미국에 있는 애 엄마나 우리 딸도 생각해야지.”
 마 부장은 회사에서 언제나 작고 초라한 모습이었다.
*
 오랜만에 찾은 ‘레드벨벳’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전염병이 창궐한 후 정부의 방역 정책에 직장인들의 술 문화가 변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났다. 레드벨벳도 불경기를 피하지 못한 것 같았다. 정장 차림으로 노트북을 보고 있는 30대 초반의 남자 한 명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50대 중반의 남자 둘이 전부였다. 
 “어머, 이게 누구야?”
 바텐에 앉아 있던 매니저 유진이 환한 얼굴로 반겼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좀 말라 보였다.
 “잘 지냈어요? 손님이 별로 없네.”
 “혼자 일하는데 손님이 매일 많으면 나도 힘들어요. 가끔은 한가할 때도 있어야죠.”
 손님이 없으면 없는 대로 언제나 밝고 유쾌한 모습이었다. 매사 긍정적인 모습도 여전했다. 유진은 눈짓으로 마 부장을 가리키며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마 부장을 바텐 앞에 앉히며 말했다.
 “우리 회사 디자인부 부장님이세요.”
 “안녕하세요. 유진이라고 해요. 반가워요.”
 유진은 환하게 웃으며 마 부장에게 인사를 건넸다. 마 부장은 유진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낯선 환경이 신기한 듯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제가 양주 이름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비싸고 좋은 술로 주세요.”
 다짜고짜 술부터 시키는 마 부장을 보고 유진은 어깨를 치켜 올리며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는 마 부장이 들리지 않도록 입모양으로 ‘술이 좀 취하셨어요’라고 했다. 유진도 알아들었다는 듯 눈을 찡긋했다. 
 유진은 양주 한 병과 과일 안주를 가져왔다. 마 부장은 말없이 내 잔과 자신의 잔에 술을 따르고 단숨에 들이켰다. 그리고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게 욕을 했다. 
 “개 같은 인간들, 다 죽여버리고 싶어.”
 아마 사장에게 하는 욕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마 부장은 안주머니의 돈을 꺼내 바텐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윤 과장, 오늘 딱 이 돈만큼만 마시고 가자고.”
 “부장님, 또 그 소리예요? 알았으니까, 천천히 드세요.”
 나는 마 부장을 달래며 유진에게는 걱정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택시를 타고 한참 이동을 해서 그런지 마 부장은 식당에서 보다 술이 조금 깬 듯 보였다. 나는 조용해진 마 부장을 보며 말했다.
 “오늘 무슨 일 있으셨어요? 아까 회사에서 나올 때부터 안 좋아 보이시던데요.”
 마 부장은 나에게 술을 따라 주며 웃었다. 
 “그냥, 내가 참 한심한 놈이구나 싶어서 그래.” 
 조명 때문인지 마 부장 눈가가 촉촉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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