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념과 친일문제에서 한걸음 물러나야"(사진=계간 아시아)

"아버님은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을 한 혐의로 1932년과 1935년에 각각 1년형과 2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하셨습니다. 그동안은 연좌제의 굴레가 무서워 포상 신청을 하지 못하다가 이제라도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게 되어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쁩니다.”

27일 시조시인인 이근배 대한민국예술원 회장(80)은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1930년대 중반 충남 아산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공로로 부친 이선준 씨(1911~1966)에게 작고 54년 만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수여된 데 대해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감회가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부친 이선준 선생은 1932년 충남 아산에서 일본 ‘천황’을 비판하는 그림을 그려 회람시키고, 아산적색농민조합이라는 지하 조직을 만들어 활동했으며, 고교생들에게 민족주의와 독립 사상을 고취시키는 격문을 발송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다.

이선준 선생의 훈장 수여는 작고 54년 만의 일이었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6일 이 회장에게 독립유공자 포상안내문을 보내면서 "일신의 안위를 버리고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하신 선생의 희생정신과 애국심은 대한민국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으며, 귀감으로서 후세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6·25전쟁 이후 남로당원 경력과 보안법 위반 등 좌익 운동 경력이 문제가 돼 이 회장의 가족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할아버지 손에 자란 이 회장은 “아버지 얼굴을 제대로 본 건, 열 살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며 “연좌제가 있던 시절에는 공직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늘 숨죽여 살아야 했다”고 밝혔다.

이런 과정을 겪은 이근배 회장은 분단의 역사에서 이어져온 '이념의 문제'는 물론이고 '친일의 문제'에 있어서도 문학은 한걸음 물러나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실제 '친일시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가 2011년 경기 파주시 6·25전쟁참전기념비에 쓴 비문에 6·25전쟁 영웅 고 백선엽 장군을 언급했다는 이유가 전부였다.

이 회장은 "국가가 의병의 날을 제정했다고 글을 써달란 청탁이 와 쓴 적이 있는데, 왜 '친일시인'한테 부탁했냐고 항의가 왔다"며 "그 이유는 내가 '미당 서정주의 제자'라서 그렇다더라"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파주에서 6·25 참전용사비를 세운다고 비문을 써달라고 해서 썼는데, 백선엽 장군의 이야기를 적었다고 '친일 찬양'이라고 하더라"라며 "백 장군이 6·25 때 잘 싸운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쓴 것일 뿐, 친일행위를 한 줄도 몰랐다"고 했다. 이어 "독립운동, 독도 만세 등의 시도 썼는데 그건 상관 없단다"며 "우리 문단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인터뷰 말미에 접어들자 “이제는 우리 역사의 아픔과 상처 속에서 생긴 글에 대한 조명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며 “단순히 좋은 시를 넘어서 한국적 역사와 생활을 반영한 글이어야 위대한 문학으로 세계의 주목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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