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하찬은(필명)씨의 소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있어'가 매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작가 하찬은(필명)
작가 하찬은(필명)

자신의 일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관심을 갖지 않는 회사 분위기 속에서 마 부장의 유일한 대화 상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유튜브 때문이었다. 
 입사 초기부터 마 부장은 내가 수주한 광고를 주로 담당했던 선배였지만 대화는 없었다. ‘진광씨! 어때요?’, ‘괜찮은 것 같습니다.’가 둘 사이 대화의 전부였다. 그것도 대부분은 마 부장의 얼굴이 아닌 마 부장 책상의 모니터를 보고 말하는 수준이었다. 
 마 부장은 나 뿐 아니라 다른 회사 직원들과도 별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 일을 하거나, 자리에 없을 때는 테라스에 나가 긴 한숨과 함께 담배를 피우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마 부장의 담배 피우는 뒷모습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측은해 보인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어느 날 어떤 직원이 무표정한 얼굴로 혼잣말인지, 들으라는 소리인지 모르게 중얼거렸던 말이 가끔 떠오른다. 
 “마 부장님 자리를 보면 누군가가 정물화 2개를 번갈아 바꿔놓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나는 그 직원이 했던 말의 의미를 몇 달이 지나서야 알아챘다. 마 부장의 공간에는 마 부장의 웅크린 등이 보이는 장면과 마 부장이 없는 장면, 하루 종일 두 장면 외에는 어떤 장면도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마 부장의 실체를 알기 전까지 마 부장은 그저 회사 사무실 한 쪽에 자리한 한 폭의 정물화였다. 
 
*

 “야! ‘큰형님’이라는 유튜브 봤어?”
  영호는 뜬금없이 전화해 다짜고짜 물었다. 
 “뭐라고?”
 나는 무슨 소리인가 싶어 되물었다.
 “이봐, 이봐 이럴 줄 알았지. 전혀 모르고 있구만. 요즘 제일 핫한 유튜브잖아.”
 유튜브 채널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직접 본 적은 없었다. 영호는 마치 유튜브를 보지 않으면 세상과 단절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했다.
 “진광아, 세상과 소통 좀 하면서 살아라. 집에서 맨날 뭐하냐? 이런 것도 안보고. 하여튼 지금 당장 보내 줄테니까 꼭 봐라. 진짜 재밌다니까. 조만간 종현이하고 같이 한 번 보자.”
 영호는 혼자 실컷 떠들어대더니 내가 뭐라고 말 할 새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카톡.’
 통화가 끝나고 곧바로 영호에게 영상이 날아왔다.
 영상 속 진행자는 모자에 선글라스, 마스크를 쓰고 목소리를 변조해 철저하게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방송을 했다. 그가 ‘큰형님’인 모양이었다. 큰형님이 원고를 만지며 방송 준비를 하는 동안 자막으로 ‘얼굴을 직접 보면 여러분들이 이야기에 집중하실 수 없을 것 같아 가렸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양해 바랍니다’라는 문장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흘러갔다. 퇴근 후 딱히 할 일이 없었던 나는 쇼파에 비스듬히 누워 영호가 보내준 영상을 아무 생각 없이 들여다봤다.
 “헤이! 씨벌놈들아 잘들 있었냐?”
  큰형님의 첫 한마디였다. 중저음의 목소리로 변조된 욕지거리에 나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자세를 바로 잡고 스마트폰 화면에 집중했다.
 -뭐야, 이거. 아무리 유튜브라지만 시작부터 이렇게 쌍욕을 해도 되는 거야?
 큰형님은 방송 내내 무시무시한 쌍욕을 찰지게 섞어가며 사람들의 원초적인 감성을 자극했다. ‘큰형님’이 올려놓은 방송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미술사, 음악사까지 다양했다. 그 중 내가 고른 방송은 역사와 관련된 방송이었다.
 “오늘은 이 큰형님이 한 번도 안 읽어봤는데, 어디선가 꼭 한 번 읽어본 것 같은 착각이 드는 삼국지에 대해 씨부려볼테니까 잘 들어라 씨벌놈들아, 알겄냐?” 
 큰형님의 이야기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만큼 흥미진진했다. 이야기 중간 중간 내뱉는 욕지거리는 통쾌했고, 그가 말하는 삼국지 내용은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나는 혼자 웃으며 욕을 따라해 보기도 했지만 큰형님의 그 찰진 욕의 맛은 아니었다. 그날 이후 나는 하루에 1~2편씩 큰형님의 방송을 찾아보는 것이 퇴근 후 일과가 됐다.
 여자 친구도 없고, 별다른 취미도 없었던 나에게 ‘큰형님’은 퇴근 후 무료한 일상을 달래주는 비타민 같은 존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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