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문체 연습'을 쓰게 된 것은, 실제로 그리고 아주 의식적으로, 바흐의 음악, 정확하게 말하자면, 플레옐관館에서 열린 연주를 회상하면서였다…… 어쨌든 내가 열두 편을 구상했던 것은 1942년 5월이었다. 나는 작업에 매달렸고, 이 보잘것없는 열두 편의 에세이에 '정십이면체'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그것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듯, 이 아름다운 다면체가 열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947년 레몽 크노가 발표한 현대문학사에서 기념비적인 역작으로 평가받는 작품. 한 젊은이를 우연히 버스와 광장에서 두 번 마주친다는 일화를 바흐의 푸가기법에 착안해 99가지 문체로 거듭 변주해낸 연작. 다양한 문체가 지닌 잠재성과 혁명적인 힘을 보여주는 책. 한국어판에는 99가지 문체가 담긴 원서 이외에 플레이드판에서 차후에 작가가 더 수행한 문체 연작에서 뽑아낸 10편을 더하여, 각 편마다 원문과 더불어 상세한 해설을 실었다.

이 책은 각 언어권마다 도전과 창작에 가까운 의지와 배반 없이는 누구도 쉬이 손대지 못할 것이라며 번역 불가능 논의가 수차례 있어온, 문학사 속의 유별난 작품 중 하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현재까지 34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조재룡 번역가는 이번 한국어판에서 각 문체에 구현된 크노의 99가지 아이디어에 대한 주해를 달고, 이에 더하여 크노가 후기에 행한 몇 편의 문체 연습에서 재밌고 흥미로운 10가지 문체를 추가로 뽑아 부록으로 실었다. 이로써 독자로 하여금 문체의 무한한 잠재적 영토를 상상해볼 수 있게끔 몇 개의 손잡이를 더 달아준 셈이다.

또한 한국어판 '차례'와 '해제'에 원어-원문을 병기함으로써, 실제로 출발어와 도착어를 넘나들며 독자가 그 언어 놀이 속에서 번역자가 완수해낸 창조적인 영역을 가늠해볼 수 있게 했다. 문어보다는 입말에 더 큰 애착을 품었던 크노의 언어관을 존중해, 한국어 독자가 얼마든지 이 짧은 텍스트를 마음껏 낭독하고 즐길 수 있도록 각 편의 제목부터 해당 문체의 특색을 살려 좀더 구어에 가깝게 옮겼다.

-레몽 크노 '문체 연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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