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북'은 매주 문인들을 만나 그들이 가진 독특한 창작 세계를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소소하면서 진지한 대담 속에서 그들의 눈으로 본 세상을 뉴스앤북이 독자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 뉴스앤북과 함께 분야와 지역을 넘어 다양한 책과 사람들을 만나보세요. 

안경라 시인
안경라 시인

울긋불긋 단풍이 곱게 물든 10월의 어느 날 뉴스앤북이 안경라 시인을 만났다.

안 시인은 생생한 감각 속에서 자신의 경험을 나지막한 목소리로 풀어낸다.

절실한 울림에 집중하다 보면 문득 그의 마음이 진심이란 강한 믿음이 생긴다.

“시를 쓰는 순간만큼은 진심을 담는다.”는 여시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Q.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A. 안녕하세요. 저는 미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안경라 시인입니다. 한국에 있었을 때부터 미국에 온 지금까지 문단활동을 이어가고 있죠. 정식으로 등단한지는 27년이 지났고, 여전히 시를 쓰고 있어요.

Q. 등단 후 27년간 활동을 하고 있는데 시인님 삶에서 시란 어떤 의미가 있나요?

A. 저한테 시는 위로라고 생각해요. 위로란 말은 내가 쓴 시, 다른 사람이 작성한 글을 보며 마음에 안정감을 얻는 거죠. 시 자체가 제 삶을 평안하게 만듭니다. 또 한편으로는 구원이라 생각하는데 종교적 개념이 아닌 문학적인 부분에서죠.

Q. 문학적인 개념의 구원이요?

A. 이 말을 잘못 이해하면 ‘어떻게 문학에 구원이 있어?’란 의문이 들 수 있어요. 정말 내가 깊은 절망, 슬픔에 빠져있을 때 거기서 조금 올라오는 것이 위로라면 더 높은 단계가 구원인거죠. 단순한 마음의 위로가 아닌 초월적 단계입니다.

Q. 조금 복잡한 개념인 것 같은데 구원을 독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A. 제가 대학에 다닐 때 조금 극단적인 행동을 했어요. 그로인해 급성간염이 찾아왔죠. 몸이 안 좋은 상황 속에서 큰 오라버니가 “시를 한번 써봐라”고 위로의 말을 건넸고 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면서 ‘내가 살아야겠구나.’란 맘을 먹었어요. 시를 붙들고 가야 내가 살겠단 생각이었죠. 저와 같은 경험이 있다면 제가 시를 통해 받았던 위로의 힘을 절실히 느낄 수 있을 겁니다.

Q. 그런 힘들었던 과정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됐네요.

A. 그렇죠. 행복하면 글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분명히 저는 문학적 구원이 있다 믿어요. 저도 타인의 시를 읽으며 눈물 흘리고, 이겨내야 한다는 힘을 얻죠. 그런 개념입니다. 시라는 것이 내 손에서 떠나면 이미 시인의 것이 아니에요. 그것을 갖고 읽는 독자의 시죠.

Q. 현재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고국을 향한 향수가 짙어지면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A. 그럴 때는 한국 드라마, 노래를 들으며 그리운 마음을 달래죠. 향수를 모두 채울 수는 없지만 잠깐이라도 위로를 받습니다.

Q. 미국, 한국에서의 문단 활동에 차이점이 있나요?

A. 한국에서는 동호회 정도의 규모로 활동을 하다가 20대 초반 미국으로 가게 됐어요. 그 때는 굉장히 순수했죠. 배우려고 하는 의지보다는 내 세계에 빠져서 어떻게 좋은 시를 써야할까란 열정만 가득했습니다. 이후 미국에서 시인이란 타이틀을 얻게 되고 비로소 시가 뭔지 조금씩 깨달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더 깊이 알아갈수록 어렵다 느꼈죠.

Q. 미주시인협회장으로 활동하는 부분에서 고충이 있다면?

A. 제가 이런 자리를 맡게 됐을 당시 협회에서 나이가 가장 어렸는데 60대를 바라보는 지금에도 막내 부류에요. 새로운 문인이 들어오지 않는 거죠. 또 신인이 협회에 가입한다고 해도 연령대가 높습니다. 한국도 비슷한 상황으로 알고 있는데 미국은 더 심각한 수준이에요. 젊은 사람들이 시라는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부분이 너무 안타깝죠. 그게 제일 큰 고충입니다.

Q. 한국에 젊은 문인들은 ‘등단 없이’란 문화를 추구하고 있는데 미국도 같은 상황인가요?

A. 옛날에 미국에서도 등단이라는 말이 ‘암행어사 출두요’란 말처럼 아주 큰 개념으로 자리 잡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시인, 작가가 될 수 있는 길이 너무 많이 때문이죠. 그래서 미국에서도 등단이란 문화가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Q. 그런 분위기가 젊은 사람들을 간단한 ‘스낵컬쳐’를 선호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A. 맞아요. 언어도 시도 계속해서 새로워지고 있죠. 제가 미국에서 생활하며 추구하는 것이 생겼는데 그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겁니다. 신세대들의 작품을 읽는 방법으로요. 그러면서 변화를 받아들이기도 하죠. 하지만 한편으론 슬픈 생각도 듭니다.

Q. 어떤 슬픈 생각이요?

A. 원래 시는 혼자 쓰지만 공유하기도 하잖아요. 현재 신인들은 자기 세계에 빠져서 공유를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만족을 위해서만 글을 쓰는 젊은 사람들이 안타까운 맘이죠.

Q. 현재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서로 간에 교류가 어렵기 때문 아닐까요?

A. 그 영향도 있겠죠. 미국에서도 코로나19로 인해 정기적인 모임, 큰 행사가 모두 취소됐습니다. 때문에 ‘창작활동에 있어 만남이 있는 소모임이 소중했구나.’라고 느껴요. 문학은 함께하는 건데 참 안타깝죠. 하지만 ‘언택트’란 사회적 분위기 속 독고의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에 ‘개인 시집을 많이 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 부류 중에 하나죠.

Q. 시인님께서도 시간이 많아져 최근 시집 『아직도 널 기다려』를 출간하셨나요?

A. 9년 만에 시집 『아직도 널 기다려』를 출간하게 됐어요. 그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갔죠. ‘그동안 내가 뭐했지’란 의문이 듭니다. 예전부터 계속 시를 써놓고 모아놓으며 ‘책을 내야지’란 생각만 했어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 세상에 제 시집을 내놓을 수 있어 행복한 마음입니다.

Q. 이 시집을 통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나요?

A. 독자들에게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단 마음은 없었죠. 제가 모아놨던 소중한 시를 묶어놔야 새로운 시에 집중할 수 있겠단 맘이었습니다. 시 속에는 시인의 사연, 이야기가 있잖아요. 사람들이 시에 표현한 저의 마음을 여실히 느껴주길 바라죠. 또 다정한 글을 쓰고 있는 나태주 시인이 해설을 써줘서 더 따뜻한 시집이 된 것 같습니다.

Q. 앞으로의 작품 활동 계획이 있다면.

A. 다시 열정을 가지고 시를 쓰려고 해요. 이제부터 2~3년 안에 시집을 낼 계획이죠. 그동안 모아놓은 시를 책으로 묶어놓고 싶습니다. 나태주 시인 얘기처럼 시를 묶어놓는 삶을 살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자유롭게 해주세요.

A. 일 년에 한 번씩 한국에 돌아오는데 이 때마다 가장 가고 싶은 곳은 유명한 장소가 아니에요. 풀꽃문학관처럼 저를 반겨주는 사람이 있는 소박한 공간을 원하죠. 같이 문학을 하는 사람끼리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시간이 아깝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고국에 오게 되면 사람 냄새를 추구 할 거 같아요. 또 계속 해서 시를 쓰고 싶죠. 감사합니다.

◆ 시인 프로필

안경라 시인은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다.

미주 「중앙일보」와 「한글문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는 『듣고 싶었던 말』, 『불소리 바람소리』 등이 있다.

제1회 미주동포문학상, 제16회 가산문학상, 제1회 해외풀꽃시인상을 수상한 바 있다.

현재 재미시인협회 회장과 미주한국문인협회이사, 「미주시학」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송영두 기자와 안 시인
송영두 기자와 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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