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북의 읽을레오 ASMR-

히가시노 게이고의 '인어가 잠든 집'을 읽고

인어가 만든 집은 일반 소설에서는 잘 등장하지 않는 뇌사자가 나온다.

작품의 제목에서 나오는 잠든 인어는 바로 어린 여자 아이인 미즈호다. 미즈호는 놀러간 수영풀 안에서 배수구에 떨어진 반지를 꺼내려다 배수구 철망에 손가락이 끼는 사고를 당한다. 주위 사람들이 사고를 인지하고 미즈호를 풀에서 꺼냈을 땐 미즈호의 심장은 이미 멈춘 후였다.

응급처치 끝에 심장은 다시 뛰게 되지만, 담당 의사의 소견은 '뇌사'였다. 뇌사란 뇌가 어떠한 자극에도 반응 하지 않는 상태로, 자가 호흡마져 불가능한 인간 기능의 완벽한 상실을 뜻한다.

의식의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기계의 도움 없이는 생명 자체를 유지 할 수가 없다. 미즈호의 엄마인 가오루코 역시 작고 사랑스러운 자신의 딸에게 닥친 '뇌사'라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이미 뇌사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딸을 보내 주는 대신, 오래오래 자신의 곁에 두고 지켜보는 삶을 택한다. 뇌사자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부수적으로 들어가는 큰 돈은, 바람을 핀 남편과 서류상으로 나마 이혼하지 않는 것으로 지원받기로 한다.

그렇게 시작된 뇌사자와 함께 하는 삶. 그것이 바로 '인어가 잠든 집'의 일상이다. 우리는 가끔 오래 시간 동안 무의식 상태로 누워 있다가 깨어 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십 수년 이상의 침묵을 깨고 일어나는 기적같은 일 말이다. 그런데 이런 기적을 행한 이들은 모두 뇌사자가 아닌 식물인간이다.

식물인간과 뇌사자의 차이를 살펴보면, 식물인간 역시 뇌사자와 마찬가지로 대뇌에 심각한 손실을 입어 모든 인지 기능이 소실된 상태는 같다.

다만 식물인간은 대뇌에 입은 심각한 피해로 어떠한 자극에도 반응 할 수 없긴 하지만, 뇌간은 손상되지 않았다. 뇌간이 살아있으면 자고 깨는 행위나 위장 운동, 자발적 호흡 등이 가능하다.

이에 반해 뇌사자는 뇌간을 포함한 뇌의 모든 기능이 정지 돼 있다. 뇌간이 손상되면 기계의 도움 없이는 자가 호흡도, 심장 박동도 불가능하다. 인공호흡기등 기계의 도움으로 호흡이나 생명 유지는 가능하지만,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결코 회복할 수는 없다.

물론 우리는 아직도 뇌에 관한 모든 것을 알지 못하기에 지구의 어딘가에서 뇌사자가 갑자기 깨어나는 놀라운 일이 일어 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그런 예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가오루코의 남편 가즈마사는 장애인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하리마테크의 사장이다.

자신의 직업적 이점을 살려 가즈마사 역시 중증 장애인들을 위해 개발 중이던 - 예를들면 전신 마비 장애인이 손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 뉴런의 활동에서 나오는 미약한 신호를 캐치하여 생각만으로 손을 움직일 수 있게하는 장치같은 - 프로그램들을 자신의 딸인 미즈호의 건강 유지를 위해 사용한다. 뇌사자는 움직임이 전혀 없기에 근육이 퇴화할 수 밖에 없다.

뇌사의 상태라도 조금 더 좋은 몸 상태를 유지 시켜 주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근육의 단련이 필요하다. 게다가 보통의 뇌사자는 당장 내일이라도 심장의 박동을 멈출 수 있기에, 더욱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미즈호는 어린 나이 때문인지 뇌사자로서는 드물게 육체적 성장도 함께 이뤄진다. 뇌는 죽었지만 몸은 자라는 아이. 죽음이 온 아이의 몸에 달라 붙어 있지만 그래도 미즈호는 매일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성장해 간다.

인어가 잠든 집에는 뇌사자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뿐 아니라, 이식만이 유일한 삶의 희망이지만 기증자가 없어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아이의 삶도 나온다. 가오루코 역시 마음한편으로는 뇌사 상태인 미즈호의 죽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조용히 잠든 채 누워 있는 딸의 생명이 끝났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미즈호의 장기를 기증함으로서 살릴 수 있는 환자들의 위태한 삶을 바라보며 남몰래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인어가 잠든 집은 뇌사의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현실감 있게 논의 한다. 뇌사자의 문제에 있어 일본이 다른 나라와 다른 점은, 일본은 아직 뇌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인어가 잠든 집은 이러한 일본의 특수성을 바탕으로 뇌사자의 죽음과 장기기증에 관한 문제를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해 보게 한다.(우리나라는 2000년 12월 9일 뇌사를 공식 인정했다) 일본은 뇌사로 의심되는 환자가 장기기증의 의사를 밝힐 때에만 뇌사 판정을 진행한다.

판정진행 후 뇌사로 판명되면, 사망 인정과 함께 장기기증의 절차가 진행된다. 단, 장기기증의 의사가 없는 경우라면 심장이 멈출때까지 뇌사 판정 자체를 진행하지 않는다.

이러한 일본의 특수성이 인어가 잠든 집을 만들어 내는 요소가 되기도 했지만, 그 누구도 쉽게 정답을 말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인어가 사는 집은 읽는 내내 심장은 뛰지만 이미 사망하였음을 인정해야 하는 쉽지 않은 결단의 순간을 그의 가족과 함께 지나친 것 같은 경험치를 준다.

의식과 생명, 삶과 죽음의 경계와 존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저작권자 © 뉴스앤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