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을, 타인의 몸을 의심하는 행위는 건강한 사람이 아픈 사람과의 관계에서 갖는 권력의 표출이다. 여기에는 "당신이 진짜 아프면 당신을 인정해줄수도 있다"라는 불합리한 사고방식이 전제돼있다. 이는 "아픈 당신을 불쌍히 여겨 이번만큼은 봐주겠다"라는 의미이다. 아주 지독한 시혜적 태도이다. 질병과 아픔에 대한 시혜적 태도는 질병이라는 조건에 처한 사람을 시민권에서 더욱 멀어지게 한다. 질병을 삶의 조건이 아닌 소외의 조건으로 만든다."

 

크론병으로 투병 중인 20대 청년이 써내려간 ‘청춘 고발기’이자 아픈 몸을 대하는 한국 사회의 모순을 비판한 날카로운 보고서다. 저자의 몸은 청춘과 나이듦, 질병과 장애, 정상과 비정상이 교차하는 전쟁터다. 사람들은 아파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자를 의심하며 장애인 옆에서는 ‘비장애인’으로, 비장애인 옆에서는 ‘장애인’으로 대했다. 겉으론 건강한 20대 청춘이지만 정작 저자의 몸은 늙고 나이든 노인의 몸을 닮았다. 청춘이지만 청춘이 아니고, 장애도 비장애도 아닌 몸, 멀쩡한 면역 수치를 억지로 낮춰야 하는 비정상의 몸. 이 책은 사회가 정의한 어느 곳에도 들어맞지 않는 바로 그 몸에서 비롯했다. 저자는 “아파도 청춘이다”라는 윗세대의 게으른 충고를 일갈하는 것을 넘어 “그런 청년은 없다”고 말하며 경계 자체를 부숴버린다. 질병과 장애를 없애야 할 것, 어서 빨리 교정해야 할 것으로 다루는 한국 사회의 폭력을 거침없이 비판한다. 

이 책은 사회가 규정한 청춘에 맞춰 자신을 무장하는 청년들에게는 가슴 벅찬 해방감을, 아픈 몸에게는 자신의 고통을 언어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감각을, 건강한 이에게는 아픔과 공존하는 또 다른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 스물여섯, 첫 책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밀도 높은 성찰과 막힘없는 사유를 보여주는 완성형 작가의 탄생! 저자만의 사유의 파동, 성찰의 맥박을 함께 뛰는 일은 우리가 청춘이라 부르는 것보다 더 격동적인 읽기가 될 것이다.

가장 찬란해야 할 스무 살의 여름, 저자는 발음조차 낯선 크론병을 진단받는다. 면역계가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 과잉 면역 반응을 일으켜 소화기의 입구부터 출구까지 염증이 생기는 희귀병이었다. 평범한 일상이 무너졌다.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밥을 먹는 날이 늘었고 수시로 몰려오는 통증에 조퇴와 결석을 반복해야 했다. 고통스러운 수술, 지리멸렬한 요양, 그리고 외로움이 스무 살의 전부였다.

그러나 아픔은 자주 묵살되었다. 사람들은 휠체어 같은 보장구를 하지도, 증상이 겉으로 드러나지도 않는 저자의 몸을 비장애인의 몸과 동일시했다. 술을 마시면 안 되는 저자에게 엄청난 양의 물을 마시기를 강요하거나 군 면제를 받은 저자를 건강한데 군대까지 안 가는 ‘신의 아들’이라며 비아냥댔다.

정체성을 의심받기도 했다. 저자가 오래 일했던 장애인권동아리의 회장으로 출마한 날, 저자는 ‘장애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동료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야 했다. 사람들은 저자를 장애인 옆에서는 ‘비장애인’으로, 비장애인 옆에서는 ‘장애인’으로 변덕스럽게 취급했다. 한 노인으로부터 ‘젊으니 금방 나을 것’이라는 무례한 훈수를 듣거나 상대의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자신이 사실은 희귀병을 앓고 있다는 걸 설득해야 했다. 청춘이지만 청춘이 아니고, 장애도 비장애도 아닌 몸, 멀쩡한 면역 수치를 억지로 낮춰야 하는 비정상의 몸.

-안희제의 '난치의 상상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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