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명이 어둠을 갈랐다. 찢겨진 자루에서 터져 나오듯 낡은 주택 사이 골목에서 뛰쳐나온 소녀의 얼굴을 점령한 것은 절망이었다. 도로를 가로지르는 소녀의 맨발에는 피가 엉겼다. 옷은 엉망으로 더럽혀져 있었고, 마구잡이로 뜯겨 나간 단추가 소녀의 뜀박질을 따라 덜렁거렸다."

 

한국 스릴러를 대표하는 소설가 정해연의 6번째 장편. 장르 불문, ‘오늘의 젊은 작가’로 주목받고 있는 정해연은 그간 한국 사회를 예리하게 투영하는 사건과 섬뜩한 묘사로 독자와 평단의 큰 주목을 받아왔다. 잔인하고 섬찟한 스릴러를 비롯하여 유쾌한 일상 미스터리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사람들이 외면하고 싶어 하는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정면으로 주시해왔다. 이번에도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또 하나의 범죄 스릴러를 완성했다.

충격적인 시작과 이어지는 파격적인 전개로 독자를 단번에 사로잡는 '두 번째 거짓말'은 황폐해진 재개발 지구에서 시작된다. 인적 하나 없을 법한 황폐한 골목,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사건 현장에는 교복을 입은 시신이 놓여 있다. 유능한 강력계 형사 두 사람, 미령과 은호가 현장에 차고 넘치는 범인의 흔적을 확인하던 중, 예기치 않은 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CCTV에 찍힌 유력 용의자가 미령의 딸을 살해하려던 것.

용의자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사건의 진상이 하나씩 수면 위로 떠오르고, 딸을 지키려는 미령과 진실을 밝히려는 은호의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두 번째 거짓말'의 특징은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정면으로 주시한다는 점이다. 디지털 성범죄, 주거 침입, 강간 미수 등은 창작물에서 더 이상 새로운 소재가 아닐 정도로 오래되고 빈번한 사건들이다. 그 가운데 성범죄는 뿌리가 뽑히기는커녕 점점 그 수법이 진화되고 있으며, 처벌 수위는 솜방망이이라는 표현이 구태의연할 정도다. 이에 대해 정해연 작가는 “너무 시끄러워서 움직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소리치고 채근해야” 하는 사건이 이 성범죄라고 말하며, 그 신념을 소설로 담아내었다.

어두운 이야기임에도 소설로서의 재미를 간과하지 않았다. 인물들이 사건에 접근해갈 때마다 인간의 다층적인 면이 한 꺼풀씩 벗겨지면서 독자는 놀라움, 짜릿함을 동시에 느끼게 되며, 인간 심리를 극한으로 몰고 가는 스릴러 장르의 재미를 최대치로 느끼게 된다.

-정해연의 '두번째 거짓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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