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북'은 매주 시집, 소설, 산문 등 신간을 발매한 작가들을 만나 그들이 가진 독특한 창작 세계를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소소하면서 진지한 작가와의 대담 속에서 그들의 눈으로 본 세상을 뉴스앤북이 독자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 뉴스앤북과 함께 분야와 지역을 넘어 다양한 책과 사람들을 만나보세요. 

류지남 시인
류지남 시인

매섭게 내리던 비가 조금은 잠잠해진 어느 날 뉴스앤북이 류지남 시인을 만났다.

충남 공주시 유구읍의 도로를 따라가다 보니 공주마이스터고등학교의 모습이 보였다.

학교 독서실에서 만난 류 시인은 구수하고 담백한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삶과 존재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여실히 느껴보자.

Q.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A. 저는 충남 공주 신풍면에서 나고 자란 류지남 시인이라고 합니다. 공주사범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뒤 36년간 교직생활을 하고 있어요. 지금은 공주마이스터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지난 1990년 ‘삶의 문학’이란 작품으로 등단해 30년간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죠.

Q. ‘삶의 문학’을 통해 문단에 들어와 작품 활동을 30년간 이어오고 있는데 시인님 인생에서 시는 어떤 의미인가요?

A. 대부분의 시인들이 ‘시가 뭐냐’란 질문에 답을 쉽게 내지 못할 거예요. 전 시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이야기라 말하겠습니다. 시로 인해 삶의 모습이나 방향이 수정되고 나아지죠. 시와 삶이 서로 주고받는 관계인 것 같아요. 누구든 삶에서 희로애락(喜怒哀樂)을 느끼는데 그 가운데 비교적 절실했던 이야기를 압축적인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이 시라고 생각합니다.

Q. 일상 속에서 시가 다가오는 시점이 있다면?

A. 흔히 시인들은 ‘시는 쓰는 게 아니라 받는다,’고 말해요. 제 삶의 절실한 순간, 굴곡 등이 지나고 나면 불꽃처럼 결정적인 순간들이 남습니다. 빠르게 지나갔던 시간을 되돌아보며 정리하는 과정 속에서 시를 발견하죠. 누구든 자기 삶의 순간들을 돌아보잖아요. 시는 인생을 돌이켜보는 거울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방법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애를 쓰고, 아이들과 더불어 시를 쓰기도 해요.

Q. 학생들과 같이 시를 쓴 다구요?

A. 제가 공주마이스터고에 발령 받은 지 6년째인데 매년 선생님, 아이들의 시를 모아 시집을 발간해요. 전교생이 글쓰기에 모두 참여하고 있고 그런 아이들을 보면 참 기특하죠. 처음부터 학생들에게 ‘시를 쓰자’라고 말하면 잘 못합니다. 그래서 아이들 개개인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도록 하고 저의 노하우를 통해 시를 뽑아내죠. 그렇게 완성된 작품들 가운데 좋은 시가 나오면 시집에 담아요.

Q. 공주마이스터고 학생들은 글을 매우 잘 쓰겠어요.

A. 이런 활동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공주마이스터고 학생들이 각종 문학행사에서 좋은 성과를 얻어내고 있어요. 너스레를 떨자면 아이들이 공주지역에서 상을 휩쓸어오죠. 이런 빛나는 결과가 있어 너무 뿌듯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글쓰기가 상을 목표로 하면 안돼요. 상에 욕심이 생기면 글쓰기의 본질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생겨요. 그 부분을 항상 조심하고 있습니다.

Q. 상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지난 2016년 풀꽃문학상을 수상하셨잖아요. 독자들이 시인님의 글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A. 저의 글은 시를 전문적으로 쓰거나 비평하는 분들한테는 크게 주목받지 못해요. 1차적으로 제 시에는 멋진 표현력이 없습니다. 제 나름대로의 색깔을 가지고 가려는 거죠. 그래서 독자가 먼저 알아보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게 중요해요. 되도록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쉽게 쓴다는 게 어려운 일이지만 사람들이 제 시를 함께 공감해주고 ‘당신 글 좋다’고 말해주면 그 자체로 큰 기쁨이에요

Q. 시집을 펴낸 시점이 15년, 3년으로 차이가 매우 큰데 이유가 있나요?

A. 제가 세 권의 시집을 냈는데 모든 작품에 저를 온전히 바치지는 못했어요. 시를 쓰는 것 보다 삶을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러다보니 두 번째 시집으로 가는 시간이 15년으로 많이 길어졌어요. 시간이 흘러 제가 충남작가회의에서 회장이란 중책을 맡게 됐는데 당시 시집을 많이 내지 못해 창피함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마침 한 출판사 관계자가 시집 원고가 있으면 빨리 넘겨 달라고 말해 바로 넘겨줬어요. 덕분에 3번째 시집을 3년 만에 출간하게 됐죠.

Q. 그 중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으시다면?

A. 두 번째 시집 ‘밥꽃’이란 시집에서 풀꽃문학상을 받은 작품 ‘등’이 기억나죠.

아무리 애를 써 봐도/혼자서는/끝내 닿을 수 없는 곳//슬픔은 쉬이 깃들지만/마주 대면/아랫목처럼 따뜻해지는 곳//다가올 땐 잘 모르다가도 멀어질 땐/파도처럼 들썩이는 곳//늘 어둑어둑해지기 쉬워서/오 촉 등(燈) 하나쯤/ 걸어 두어야 할//내 몸의 가장 깊고 어두운 곳(‘밥꽃’ 中 ‘등’)

주로 시인들은 밝고 행복하고 좋은 일보다 쓸쓸하고 외롭고 슬프고 아픈 일들에 주목해요. 슬픔이 깃드는 곳, 스스로에게 어두운 곳이 되는 곳이 바로 등이죠. 그 쓸쓸함과 외로움을 정리했는데 시가 많이 알려지고 노래로도 만들어져 기억에 가장 남습니다.

Q. 교직생활을 하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A. 제가 모음과 자음에 대한 수업을 진행했을 때가 생각나요. 모음은 말 그대로 엄마소리, 자음은 자식소리죠. 두 관계는 서로가 필요하고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학생이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흘렸어요. 엄마를 여윈지 며칠 안 된 아이였죠. 저는 무심결에 말 했지만 그 아이는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어요. 이 학생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자음의 힘’이란 목차를 제 시집 ‘밥꽃’에 넣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음의 힘’은 제 반성문이라고 할 수 있죠.

Q. 시를 쓰는 과정에서 힘들었던 부분은 없으셨나요?

A. 어떤 시는 짧은 시간 안에 써져서 크게 고치지 않아도 완벽해요. 번개처럼 다가온 영감에 언어의 옷을 입히고, 형상화 시켜 초고에 완성하죠. 그런 일이 흔하지 않아 삶의 순간들 가운데서 시적 순간이라 생각되는 부분을 메모한 뒤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그걸 시로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시의 한 구절을 수정하느라고 밤샘 작업을 해요. 그럴 때 저의 언어적 감각과 능력에 회의감이 들고 지쳐버립니다. ‘이렇게 쓴 시들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란 후회감이 들 때가 가장 힘들죠.

Q. 앞으로의 작품 활동 계획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릴게요.

A. 제가 시골에 들어와 산지 20년이 넘었어요. 시골 논밭에서 일하는 노인들은 대부분 등이 굽어 있는데 ‘구부러지고 늙었다‘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있죠. 하지만 저는 구부러진 것이 소중한 아름다움,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래 제 고향은 아이들도 많고 풍성했지만 제가 어른이 되어 만난 마을은 죽어가고 있었어요. 저는 이런 상황이 너무 안타까워 굽어가는 농촌을 일으키고 싶은 마음이죠. 제 세 번째 시집에는 비워져가는 마을에 대한 슬픔을 담은 작품이 있습니다. 다음 작품에서는 아이들 우는소리, 노는 소리가 사라진 마을에 대한 아픔과 어렸을 때 가난했지만 풍요로웠던 마음들을 대비시킬 예정입니다. 그런 이야기들을 세상에 던져보고 싶어요.

Q. 추천해주고 싶은 시인, 작가님이 있나요?

A. 아직 세상에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어쩌면 공주, 충남을 넘어 한국을 대표할 작가가 될 김홍정 소설가를 추천하고 싶어요. 작년에 대하소설 ‘금강’을 출간했고 다양한 중, 장편 소설을 집필하며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죠. 엄청난 작업을 하고 있는 김 소설가의 이야기를 뉴스앤북이 담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 공주마이스터고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A. 저는 학생들에게 늘 독서를 강조해요. 책을 많이 읽으면 내공이 쌓여 훌륭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죠. 저희 학교는 인문계 학교와 다르게 먼저 취업을 돕고 그 후에 기회가 생기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공부를 통해 대학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인문계 학생들에 비해 서운한 감정들이 있기 마련이죠. 하지만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자신의 큰 꿈을 펼쳤으면 좋겠어요. 성실하고 바른 인성을 가진 아이들을 뒤에서 열심히 밀어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가 프로필

류지남 시인은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시골 학교에서 아이들과 더불어 읽고 쓰는 일을 하면서 형님네와 한 집에 더불어 살면서 가끔씩 소똥을 치우기도 한다. 1991년 『삶의 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작가회의 충남지회장직을 역임했다. 현 공주마이스터고등학교 교사다.

2016년 풀꽃문학상, 젊은작가상을 수상했으며 시집으로 『내 몸의 봄』(2001) 『밥꽃』(2016) 등이 있다.

송영두 기자와 류지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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