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끝나지 않은 아파트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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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끝나지 않은 아파트 게임
  • 전우용 기자
  • 승인 2020.08.02 17: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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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진태 블루프린트북 대표
영화 '플란다스의 개', 그리고 '아파트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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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세계적인 거장으로 발돋움한 봉준호 감독의 출발은 그리 성대하지 못했다. 창작자의 눈에만 부각되는 크고 작은 결함들 때문에 감독 본인 또한 데뷔작을 가장 아픈 손가락으로 꼽곤 한다. 하지만 '플란다스의 개'를 지금 다시 보면, '기생충'과 놀랍도록 유사한 설정들이 눈에 들어온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며, 반대로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구조, 착취의 관계가 역전되는 순간, 으슥한 지하공간에 기거하는 사람의 존재가 그러하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러하다. 배경은 2000년의 한 아파트 단지. 백수와 다름없는 인문학과 시간강사 윤주(이성재)는 아파트 단지에 시끄럽게 짖어대는 강아지 소리를 견디다 못해, 강아지를 납치해 지하실에 가둬둔다. 하지만 다른 강아지로 오인했음 알고 다시 지하실에 가보지만, 아파트 경비(변희봉)가 이미 강아지를 죽인 후였다. 시끄러운 강아지의 정체가 아래층 할머니의 강아지였다는 것을 안 윤주는 다시 강아지를 납치해 이번에는 제대로(?) 소음의 원인을 제거하지만, 아파트 관리실에서 일하는 현남(배두나)에게 발각되어 아파트에서의 한바탕 추격전이 벌어진다. 한편 이런 사실을 모르는 윤주의 아내(김호정)는 집에 강아지를 입양해왔는데, 윤주는 얼마 가지 않아 강아지를 잃어버린다. 그 강아지가 사실 윤주의 정교수 임용을 위한 아내의 퇴직금과 다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윤주는 이제 반대로 강아지를 찾아다닌다.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
박해천 교수의 '아파트 게임'
박해천 교수의 '아파트 게임'

처음부터 ‘봉준호 월드’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축은 공간이다. 감독은 현실적인 공간을 설정해놓고, 그곳에 기거하면서 공간에 부여된 사회의 모순적인 구조를 체화한 인물들을 배치시킨다. 한강에 사는 괴물, 열차에 사는 생존자들, (반)지하에 사는 하층민들, 그리고 송파구의 아파트에 사는 윤주가 있다.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문득 이 윤주라는 인물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게 될지, 그동안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왔는가가 궁금해졌다. 이후의 시간에 대한 가상의 시나리오는 박해천 교수의 책, '아파트 게임'에서 살펴볼 수 있다.

'아파트 게임'은 은퇴를 앞둔 유신 세대, 민주화운동 이후에 허무한 사회 변화를 목도한 386 베이비부머 세대, 혁명의 흔적이 사라진 이후에 오로지 생존만을 위해 살아온 젊은 세대가 중산층으로 진입하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를 ‘비평적 픽션’으로 추적한다. 아파트는 중산층의 사회경제적 욕망의 문화를 형성하여 ‘주거’의 문제를 시세 차익의 ‘자본의 게임’으로 교묘하게 바꿔놓았다. 격변하는 정치적 풍경 속에서 사회가 벌여놓은 숫자 게임에 뒤늦게 참가한 결과는 참담했다. 두 번의 경제 위기(97년과 2008년)와 결국 부동산 시장에 굴복했던 그동안의 정부의 정책들로 인해 가게 부채는 급증했고, 이를 감당하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하우스푸어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시대 서민의 자화상이 되었다. 그나마도 지금의 젊은 세대는 이 게임에 참가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다시 '플란다스의 개'로 돌아가서. 영화 속 윤주는 나이를 가늠해보건대, 민주화운동의 열기가 모두 사라진 이후에 대학을 나온 세대일 것이다. 인문학도인 그와 아내의 직업으로 추측컨대, 송파구의 아파트는 그들의 자가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영화의 말미에 강아지를 되찾은 윤주는 아내의 퇴직금을 학과장에게 바치는 ‘떡값’으로 사용해 결국 교수 자리를 얻어내는 데 성공한다. 사회의 비정함에 희생된 동료의 빈 자리를, 그렇게 그는 한바탕 소동으로 지켜낸 참가비로 사회의 게임에 참여하게 되고, 곧 태어날 그의 아이와 가족의 서사를 만들게 될 것이다. 직업적으로 중산층에 진입한 윤주의 다음 스텝은 돈을 모아 자가와 차를 마련하는 것. 그러나 윤주는 8년 후에 벌어질 일을 예상이나 할 수 있을까.

이 글은 한 영화를 두고 벌인 또 하나의 비평적 픽션이다. 하지만 사건의 동기와 배경을 거시적인 관점으로, 공간의 사회적 함의를 파악하면서 본다면, 이 모든 헛소동들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우리의 이야기가 된다.

전우용 기자 jwy@newsnb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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