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우바오쑹의 '어린 왕자의 눈'을 읽고  -이세정 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

이세정 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
이세정 국민대 시각디자인학과

현대인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가진 채 살아간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이 있는 곳을 향해 끊임 없이 나아간다. 그들이 향하는 ‘그 곳’은 순수와 호기심이 가득 찬 세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순수와 호기심이라는 스펙트럼의 끝에는 기계적이고 계산적인 세상이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후자의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 곳이 바로 성공의 길이라고 생각한 채로. 하지만 여기서 놓치고 있는 한 가지가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동안 우리를 둘러싼 소중한 관계들을 배제시키고 있다는 것을.

저우바오쑹의 '어린 왕자의 눈'은 대부분이 망각하고 있는 이러한 사실을 독자에게 이따금 자각시키기 위해 생택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끌어들였다. 어릴 때 필독서인 만큼 대부분 이 책을 읽어 보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호기심 많은 어린 왕자가 자신의 별인 B612를 떠나 여러 행성을 떠돌다 지구를 발견하고 여러 인물들을 만난 후 다시 자기 별로 돌아가는 줄거리임을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책을 덮었을 것이다. 그렇게 책의 표면적인 내용만 이해할 뿐, 깊숙이 내제된 본질을 무시하거나 무지한 상태로 남겨둔다.

저우바오쑹은 '어린 왕자'에 담긴 이면을 아주 철학적으로 풀어낸다. 생택쥐페리가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관계의 ‘길들여짐’이다. 그리고 저우바오쑹은 이를 키워드로 하여 우리가 잊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한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자신을 길들여 달라고 한다. 그리고 어린 왕자는 길들여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여기서 길들여진다 함은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관계의 형성은 일방적이 아닌 길들이고, 길들여지는 두 상대가 서로 시간을 들이며 상호적으로 이루어진다. 사실 길들여짐 은 자기 자신의 주체성이 발현됨을 전제로 한다. 이 전제가 뒷받침 되어야 상대방의 주체성도 온 마음을 다해 존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저우바오쑹은 나 스스로를 돌봄과 동시에 상대를 돌봄을 통해 이상적인 길들여짐의 끝에 도달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어린왕자의 눈
어린왕자의 눈

 

하지만 지금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자. 사람들은 언제나 바쁘다. 더불어 그들은 앞만 보고 달려간다. 그렇게 쥐도 새도 모르게 서서히 동심의 순수함과 나를 둘러싼 소중한 존재의 가치를 잃어 가고 있다. 이게 유년기 진심으로 동경했던 어른의 모습인가.

이 책은 등지고 살아왔던 순수와 호기심이 가득한 세상의 문을 열 기회를 제공한다. 너무 오래, 그리고 너무 멀리 와 버린 건 아닐까 하는 매너리즘에 빠질 즈음에 저우바오쑹의 문장 한마디 한마디는 이따금 내가 걸어온 길의 방향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생택쥐페리가 '어린 왕자'에 녹여낸 자신의 철학적 이면을 '어린왕자의 눈'을 통해 깨달은 후 다시 한 번 '어린 왕자'를 읽어보길 권한다. 이전에 스쳐 지나간 부분들이 새롭게 보임과 동시에 두 책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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