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영의 하루한줄] 장애인을 향한 흔한 편견, 그들은 성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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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영의 하루한줄] 장애인을 향한 흔한 편견, 그들은 성욕이 없다?
  • 강선영 기자
  • 승인 2020.06.29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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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여성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억압적인지, 섹스를 말할 수도 해볼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러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관에 들어가는 날까지 처녀의 몸을 유지하는 사람이 다수를 차지한다. 섹스하고 싶은 장애 여성은 그저 남몰래 비공식적으로 할 뿐 결혼은 그들의 몫이 아니다. 그래서 동거나 하룻밤의 섹스를 하는 장애 여성이 적지 않다. 만약 상대와 결혼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행운아인 셈이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고 다채로운 사랑 이야기가 있다. 젊은 남녀의 사랑뿐 아니라 나이, 계급, 국적, 인종의 차이를 뛰어넘는 사랑, 나아가 성소수자들의 사랑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이 모든 사랑에 속해 있으면서도 없는 듯 무시되거나 특별한 미담으로만 소비되었던 또 하나의 사랑이 있다. 바로 장애인의 성性과 사랑 이야기다.

장애인은 신체의 일부가 손상되었을 뿐인데, 마치 그 손상과 함께 성적인 욕망이나 타인과 깊은 관계를 맺고자 하는 갈망까지 제거되었다는 듯 무성無性의 존재처럼 취급되거나 일방적인 피해자로 여겨지기 일쑤다. 타이완판 ‘도가니’라 불리는 특수학교 성폭력 사건을 폭로했던 저널리스트 천자오루는 장애인 당사자와 그 부모, 돌봄 노동자와 사회복지사, 인권단체 활동가와 특수학교 교사, 장애인을 위한 성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 등 전방위적인 취재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오랜 세월 봉인되어 있던 장애인의 성과 사랑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지체장애인의 성적 욕구를 생각해본 일이 있는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연애를 색안경을 낀 채 본 적은 없는가? 부모가 되려 하는 지적장애인 부부를 지지할 수 있는가? 장애인 자녀의 성 문제를 막기 위해 성기나 자궁을 적출하는 부모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장애인을 위한 성 서비스는 국가나 기관이 제공해야 할 복지인가, 아니면 오히려 장애인에 대한 모욕인가? 가장 첨예한 질문을 안고, 가장 뒤늦게 찾아온 사랑 이야기가 여기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혐오와 무지, 논란의 한가운데서 이들의 욕망과 필요, 절망과 체념의 심연을 오롯이 전하겠다는 저자의 뚜렷한 의지다. 섣부른 비난이나 옹호에 앞서 일단 말하고 듣고 함께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에두르지 않고 분명하게 묻는 저자 앞에서 장애인 당사자들은 어둠 속에 방치해두었던 마음속의 말을 다 꺼내놓았다. 덕분에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온몸으로 분투하는 용감하고 매력적인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만나볼 수 있다. 세상은 그들을 ‘장애인’이라는 하나의 말로 분류하지만, 만 명의 장애인에게는 만 가지 빛깔의 사랑이 숨 쉬고 있다.

-천자오루의 '사랑을 말할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에서

강선영 기자 ksy@newsnb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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