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영의 하루한줄] 고독한 타인의 삶, 무심코 건네는 위로의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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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영의 하루한줄] 고독한 타인의 삶, 무심코 건네는 위로의 한마디
  • 강선영 기자
  • 승인 2020.06.22 06: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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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에서 당장 꺼지라고, 땅으로 꺼지든 하늘로 꺼지든 푹 꺼지라고 푹푹 찼다. 하지만 푹은, 평생을 세상으로부터 맞고만 살아서 맞는 데 이골이 났다는 표정으로 꼼짝하지 않았고 자리를 피하지도 않은 채 인터넷에만 푹 빠져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푹은 훨씬 크고 훨씬 더 검어지고 훨씬 더 더 무거워져 있었다. 더 말랑해진 건 말할 것도 없었다."

 

2019년 이효석문학상 수상 작가 장은진의 세 번째 소설집 '당신의 외진 곳'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두 번째 소설집 '빈집을 두드리다' 이후 8년 만에 묶어 내는 신작 소설집이다. 첫 번째 소설집에서 “자학적인 고립과 결여 상태를 감수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출구 밖 타인들을 향한 소통에의 욕구를 포기하지 않는다”(김형중)는 평을, 두 번째 소설집에서는 “밖을 갈구하지만 안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책”(정실비)이라는 평을 들은 바 있는 장은진의 소설 세계는 세 번째 소설집에 이르러 만조에 다다른 듯하다. 

바다가 가장 높은 순간 파도가 끝까지 일렁이는 모습처럼, 작가는 한 권의 소설집에 춥고 사나운 마음을 자유자재로 부려놓는다. 혼자라고 생각하는 이들, 혼자라고 생각해서 남아 있는 관계를 스스로 끊는 이들, 외로움에 몸서리치더라도 혼자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기 위해 작가는 오랜 시간 흐린 창 앞에 서 있다. 웃풍이 드는 그곳에서 기꺼이, 가만히 타인의 고독을 살핀다.

체념한 듯 체념하지 않는 태도는 장은진의 인물들의 특징이며, 장은진의 소설의 특기다. 작가는 중심에서 얼마간 소외된 인물을 그리면서도 부풀리지 않는다. 남에게 자신이 사는 방식을 좀 더 세련되게 보여주려고 애쓰거나 인생에 힘든 구간에 있음에도 짐짓 밝아 보이려 ‘척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각자가 겪는 고통과 불안을 그만큼의 사이즈로 들여다볼 뿐이다. 작품마다 인물들은 삶의 숨통을 틀어막는 극심한 가난이나 불행은 겪지 않지만, 자신이 어쩌다 이런 곤란에 머무르게 되었는지 오래 생각한다. 

곤란의 사이즈를 정확히 아는 그들이므로, 소망하는 것 역시 대단한 판타지가 아니다. 그들은 아주 약간의 소망만을 지닌 채 산다. 지금 몸을 뉘인 이 방의 넓이가 조금만 더 넓기를, 온도가 조금만 더 따뜻하기를, 그리고 그렇게 ‘조금 더 나은 삶’을 바라는 자신을 누군가는 조금만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다시 삶을 이어 간다. 아르바이트를 구하고('외진 곳'), 끊임없이 길을 걷고('이불'), 마을 벽에 일기를 쓰며('안나의 일기'). 그들은 현재에 좌절하여 미래를 염원하면서도 삶 전체를 방기하지는 않는다. 보리차를 끓이고, 달걀말이를 부치고, “자기 숨으로 덥힌 공기로 추위를 조금씩 누그러뜨리며”('외진 곳') 일상을 지켜 간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스스로 온도를 높이며, 스스로의 슬픔을 감내하며 사는 일뿐이므로.

-장은진의 '당신의 외진 곳'에서

강선영 기자 ksy@newsnb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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