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북'은 매주 시집, 소설, 산문 등 신간을 발매한 작가들을 만나 그들이 가진 독특한 창작 세계를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소소하면서 진지한 작가와의 대담 속에서 그들의 눈으로 본 세상을 뉴스앤북이 독자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 뉴스앤북과 함께 분야와 지역을 넘어 다양한 책과 사람들을 만나보세요. 

이강산 작가
이강산 작가

"저는 찍지 않으면 쓰고, 쓰지 않으면 찍습니다"

때아닌 더위가 찾아온 6월의 어느날 뉴스앤북이 법동의 한 카페에서 이강산 작가를 만났다.

이 작가의 첫인상은 매우 겸손하고 친절했으며 소탈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당히 신중하고 섬세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였다.

현재 시, 소설, 아날로그 흑백 사진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던 그는 두서없이 사진 이야기부터 꺼내든다.

다양한 색, 아름다움을 찾는 시대에 아날로그 흑백 사진 작업을 한다는 이 작가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본다.

이강산 작가의 아날로그 흑백 작품
이강산 작가의 아날로그 흑백 작품

Q. 색감을 추구하는 시대에서 아날로그 흑백 사진을 고집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A. 요즘 세상에 왜 아날로그를 추구하느냐에 대한 대답은 쉽고도 어려운 질문이에요. 사진의 본질은 진실성, 사실성의 기록인데 아날로그 사진은 고칠 수 없어요. 있는 그대로를 담아내죠. 요즘 추세가 빈티지 쪽으로 많이 가고 있어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편한 생활을 위해 전원주택이나 아파트를 찾는데 젊은 사람들은 옛날 집, 빈티지한 감성을 추구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과거로 가려는 본능이 내제돼 있죠.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왜 흑백 필터를 넣겠어요? 다 아날로그를 추구하는 현상이에요. 아날로그 흑백 사진은 거친 질감, 섬세함이 있어요. 그 매력에 빠져 40여 년 동안 이 작업을 하고 있답니다.

Q. ‘하모니카를 찾아서’를 출간하시게 된 소감은?

A. ‘하모니카를 찾아서’는 저의 다섯 번째 시집인데 제목에 있는 하모니카는 자기 정체성의 객관적 상관물이에요. 자신의 꿈, 이상,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이 죽음에 이를 때 까지 이어지는데 그 상징물을 하모니카로 표현한 거죠. 실제로 저희 아파트에 팔 다리를 못 쓰시는 분께서 밤낮으로 주차장에서 하모니카를 연주하셨어요. 하모니카는 구슬픈 선율에 담긴 슬픔, 그 장면에서 모티브를 얻게 됐어요. 이번 시집에 시가 61편이 담겨있는데 모든 작품이 정체성을 찾기 위한 내용이에요. 제가 원래 욕망이 많았는데 '많은 것을 내려놓고 남은 삶 동안 진짜 나를 발견해보자'라는 의미로 시집을 출간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정말 뜻깊고 기분이 좋아요.

Q. 앞으로 ‘하모니카를 찾아서’를 읽게 될 독자들에게 해주실 말씀이 있다면?

A. 아직 자신의 모습을 찾지 못한 중·고생, 대학생들이 제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시집 전체가 명상적 시를 담아냈어요. 10여 년간 섬, 오지, 뒷골목에서 혼자 떠돌면서 품었던 명상적 사유를 써내려간 산물이죠. 학생들이 읽기에는 간혹 어려운 표현이 많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독자들이 반복해서 읽는다면 많은 여운이 남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두, 세 번 반복적으로 읽다보면 제가 시에 담긴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오귀스트 로댕이 “시간을 쌓아 이룬 업적은 시간이 존중하는 법이다”란 말을 했어요. 저는 꿈을 이루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이 말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는데 굉장히 많은 시간이 걸리잖아요. 하나의 주제로 5년, 10년을 몰두하잖아요. 시간을 쌓아 이룬 업적은 모두 의미 있는 선물이 된다고 생각해요. 10년 후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고 살아가다 보면 결국엔 성공한 나를 찾게 될 거에요.

Q. 시집에 명상적 시를 수록하신 이유가 있나요?

A. 그럴만한 필연이 있었죠. 아내가 명상과 요가를 가르치는 강사인데 저희 부부가 요가 명상 수련을 이어가고 있는데 과거에 제가 죽을 만큼 큰 고통을 겪었어요. 그래서 20여 년 동안 철저히 혼자서 섬, 오지, 뒷골목을 돌아다니며 속병과 마음의 병을 치료했죠. 그 과정에서 스스로 명상적인 생각을 많이 했고 그런 쪽으로 시가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제 시, 소설, 사진에는 사회적 약자, 낮고 어두운 곳, 가진 건 없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담겨있어요.

Q. 마음의 병을 고치는 과정에서 힘든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A. 낙엽 같은 통통배에서, 풍랑에 갇힌 소청도에서, 노숙의 동행을 즐긴 팔부능선 바위틈에서, 만 원짜리 지폐 한두 장으로 수없이 닻을 내린 육지의 섬 여인숙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많이 고독하고 외로웠죠. 나 홀로 기행을 즐기다 산에 갇히기도 했고, 눈에 고립된 적도 있었어요. 집에도 못 돌아 온 적도 있었어요. 몸이 안 좋은 가운데 혼자 요양을 하고 명상을 하고, 시를 썼잖아요. 낮에는 찍고 밤에는 썼어요. 찍지 않으면 쓰고, 쓰지 않으면 찍었어요. 그런데 몸이 아파서 장시간 작업도 못하는 거예요. 앉아 있을 수가 없었죠. 마지막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대상으로 작업을 하다 보니 그 과정에서 슬펐던 일도 많아요. 제가 비상업적  다큐사진을 하다보니 경제적으로 그들을 도와줄 여력도 안됐죠. 마음이 아팠습니다.

Q.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행복했던 기억도 있으신가요?

A. 집을 떠나 세상의 길을 걷는 것, 나는 즐거운 유랑이라 했지만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무모한 짓이라 했어요. 하지만 역마 같은 유랑을 즐기는 사이 이순이 됐어요. 이미 숱한 사람들이 지나간 길, 그 중년의 시간을 나도 다녀왔죠. 뒤늦게, 혹은 조금 일찍. 홀로, 침묵으로. 지나다 보니 시간의 길은 언제, 어디서나 사막이면서 숲이고 바다였고, 사람이었어요.

내일은 밀물에 젖으려고요//지금은 빈 바다 나 홀로//갯벌의 마음 바람의 눈물//먼 길 사무친 당신의 유랑//내일은 첫배처럼 섬에 드는 날//생에 단 한 번 마지막인 듯//당신의 밀물에 젖으려고요(하모니카를 찾아서 中 ‘송이도’)

이게 제 작품 송이도에요. 이 작품을 얻었을 때 몸은 힘들었지만 너무 행복했어요. 한 지인 분께서 이 글을 읽고 저한테 큰 감동을 받았다고 말해줬어요. 그 때 기분은 말로 표현 못하죠. 또 몸이 깨지고 부서지며 겨울 산에 올라 좋은 사진을 찍었을 때도 마찬가지에요. 때론 설레고, 때론 고통스럽던 기행에 마지막은 항상 ‘기쁨’이 있어요.

Q. 고된 작업을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A. 저는 걸어 다니며 사진으로도 시를 쓰고 시로도 사진을 찍어요. 카메라로 시를 찍고 세상을 담아내는 거죠. 제가 작품 활동을 위해 오지, 섬을 다녀오면 며칠씩 집에 쓰러져 있어요. 몸이 아프고 힘드니까요. 그런데도 갔다 오면 반드시 거머쥐는 사진 또는 시, 스케치한 인물에 대한 소설이 있잖아요. 그런 결과물을 얻었을 때 엔도르핀이 돌고 활력이 다시 생겨요. 그래서 고된 작업도 포기하지 않죠.

Q. 시, 소설, 사진을 동시에 하고 계신데 가장 마음이 쏠리는 활동이 있나요?

A. 장편 소설 ‘나비의 방’을 집필하면서 “소설은 세상에 모든 이야기를 다 담는구나, 소설이야 말로 진정한 문학이다”라고 생각했어요. 그 과정에서 시를 소홀하게 할 뻔 했죠. 그런데 소설을 쓰는 중간에도 계속해서 시상이 떠올랐어요. 하지만 시와 사진보다 가장 중요한건 사진이라고 생각해요. 어리석은 질문으로 “시, 소설, 사진 중에 하나만 선택하지 않으면 당신이 죽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제 삶의 선택은 ‘사진’이라고 답할 것 같아요. 시, 소설, 사진에 쏠리는 마음이 2 : 2 : 6이라고 말하면 소설과 시가 서운해 할 것 같아서 3 : 3 : 4 라고 말하고 싶네요.

Q.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작가들에게 문학현장은 꽤나 생계를 꾸리기 어렵잖아요. 그런 이유 때문이라도 아내에 대한 고마움이 더 클 텐데?

A. 저의 90%는 아내의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고마움이 커요. 요즘 시대는 자기를 알려야 하는 시대잖아요. 책을 출판하면 제가 가장 먼저 알리고 발품을 팔아야 해요. 아내는 제 작품의 최초의 독자이기도 하면서 작품 홍보 활동 선봉에 서 있는 사람이에요. 제가 작품 활동을 위해 타지에서 생활하고 집에 잘 들어오지 못해도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뒤에서 아무런 불평 없이 많은 도움을 줬어요. 무조건 적인 사랑을 주는 아내는 저에게 정말 소중한 사람입니다.

Q. 앞으로의 작품 활동 계획이 있으시다면?

A. 시, 소설, 사진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의 모습을 계속해서 담아낼 예정이에요. 제 작품의 전체적인 관점은 ‘휴머니즘’이예요. 휴머니즘을 실현하는 게 제 목표에요. 저희 아버지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고, 평생을 장터에서 떠돌던 장돌뱅이였어요. 제가 장터에서 자라기도 해서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근·현대사의 아픔을 작품에 녹여내고 있는 거죠. 앞으로도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줄 예정입니다.

Q. 작가님께서 추천하고 싶은 분이 있나요?

A. 저는 권덕하 시인을 추천하고 싶어요. 그 분은 원래 시인이 아니었어요. 원래는 10년 이상을 공부해 영문학 박사를 전공하셨던 분인데 멋있고 예쁜 글을 쓰시는 분이에요. 시를 정말 사랑하고 아끼시는 분 훌륭한 분이에요. 오는 7월에 시집을 발간하는데 1순위로 추천하고 싶네요.

■ 작가 프로필

이강산 작가는 충남 금산 출생, 1989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해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모항母港』 『물속의 발자국』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 소설집 『황금비늘』, 장편소설 『나비의 방』, 흑백명상사진시집 『섬, 육지의』, 휴먼다큐흑백사진집 『집-지상의 방 한 칸』 등을 출간했다.

'휴먼다큐' 아날로그 흑백사진 개인전 5회 개최하기도 했다.

2014,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시 부문), 대전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금(소설 부문)을 수상한 바 있다.

이강산 작가와 송영두 기자
이강산 작가와 송영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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