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내지마 (never let me go)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신현종 조선일보기자

조선일보 신현종 기자     

권위의 상징 노벨상도 미투'(Me Too)'로 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성추행과 관련된 부끄러운 논쟁은 극기야 2018년도 수상자를 내지 못했고, 이듬해가 되어서야 두 명의 수상자를 발표했다. 노벨문학상이 수여되지 못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인 1943년 이후 75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진통에도 노벨상의 권위는 여전히 굳건하다. 꿈꾸는 수많은 이들 중 이뤄내는 하나는 언제나 귀하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가로서도 그의 조국으로서도 대단한 영예가 아닐 수 없다. 스웨덴 한림원은 선정의 이유로 "그의 소설에는 위대한 힘이 있다. 세계와 연결돼 있다는 우리의 환상, 그 아래 심연을 밝혀냈다."고 했다.

이렇게 독특한 문체로 인간의 깊은 곳을 파헤치는 가즈오 이시구로는 이름과는 달리 일본의 작가가 아니다. 1954년 11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부모와 함께 5살인 1960년 영국으로 이주, 현재는 현대 영미 문학을 이끌어가는 거장이 됐다. 일본어도 잘 구사하지 못하고 스스로가 자신이 그리는 일본은 상상의 산물이라고 밝힐만큼 태어난 나라와의 거리감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일본 태생이라는 점은 일본 사람들에게 절반의 자부심으로 다가서는 모양이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출생국가와 국적이 다른 역대 5번째 수상자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나를 보내지 마』는 2005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복제 인간의 사랑과 슬픈 운명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에 의문을 제기한 작가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으로 《타임》지의 ‘100대 영문 소설’ 및 ‘2005년 최고의 소설’로 선정되었고, 전미 도서협회 알렉스 상, 독일 코리네 상 등도 받았다.

내용을 보면 주인공인 캐시는 영국 '헤일셤'의 엄격한 기숙학교에서 자란다. 같이 지내는 아이들은 모두 부모가 없는데, 그 이유는 그들 모두가 처음부터 장기 이식을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클론들이기 때문이다. 외견상으로는 보통의 기숙학교 학생들처럼 정규 교육을 받고 여가를 보내는 등 평범한 일상을 보내지만, 그들은 어릴 적부터 각인되어 온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잘 알고 있다.

성인이 된 클론들은 잠시 간병사 등의 직업을 갖기도 하지만, 20대 청춘은 장기 기증자로서 그들의 활용치가 최고조인 시기이기에 그들은 곧 기증자가 되어 끊임없이 자신의 장기를 적출 당한다. 수술의 강도에 따라 어떤 기증자는 장기 적출 2 번 만에 목숨을 잃기도 하고, 용케 생명의 끈을 부여잡고 버텨내는 이들은 최장 4번의 장기적출 수술을 받다 숨을 거둔다. 이들 대다수는 기증자로 태어난 자신들의 운명을 잘 알고 있기에 아무런 저항 없이 주어진 삶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이런 그들의 마지막 소망은 기증 수술 후 살아 난 회복실에서라도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헤일셤의 친구들을 한 번 보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병마가 가지는 어둡고도 음습한 절대적인 힘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불시에 닥친 소름끼치도록 무서운 죽음이라는 강자와 맞서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약간의 반칙은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자신을 합리화 시킨다. 이런 그들의 손에 돈이라는 절대 무기가 있으면 더더군다나 고뇌의 시간은 짧을 수밖에 없다.

클론의 효용 가치가 높은 것은 나와 유전자가 동일하기에 장기 이식의 가장 큰 실패 요인인 거부반응이 없다는 것이다. 나 자신과 모든 게 같은 다른 하나의 나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두 명일 필요는 없다. 내가 둘이어야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나의 삶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러던 어느 날 제임스 모닝데일이라는 한 과학자가 스코틀랜드의 벽지에서 클론을 뛰어 넘는 완벽한 DNA를 가진 인간을 만드는 실험을 한다. 일반의 사람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한 DNA 인자만을 모아 완벽한 구조의 인간을 만드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세상에 알려지고, 사람들은 일반의 능력치를 웃도는 그 잘난 시험체들이 종국에는 보통의 인간들보다 더 우수한 두뇌집단이 되어 자신들을 지배하려 들지 않을까 염려하게 된다.

이에 캐시의 고향인 '헤일셤'은 사람들의 두려움 속에 급히 폐쇄 되고, 정부가 운영하는 거대하고 비루한 클론의 사육장만이 남아 남은 이들은 더욱 더 고독한 실험체의 삶을 영위하게 된다.

나를 보내지 마

 

주인공 캐시와 헤일섬에서 같이 자란 클론 토미는 캐시와 서로 사랑했지만 사소한 오해로 서로의 감정을 끝내 고백하지 못한다. 성인이 되어 남은 삶이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기증 수술 후의 생의 작은 공백기만이라도 함께하기를 꿈꿔보지만, 아무도 그들의 마지막을 궁금해하지 않기에 병상에서 조용히 생을 마감한다.

올 해 우리는 '코로나19'라는 무서운 바이러스에 많은 소중한 생명들을 잃었다. 죽음과 감염의 공포속에 때론 겁에 질렸고, 더 안전하고자 하는 욕구에 서로간에 생채기도 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귀한 목숨을 잃은 모두가 어쩔 수 없이 병마에 휩쓸려 생을 마감한 것은 아니다. 죽음이 내 발목 언저리에 와 있는 공포의 시간들 속에서도 나 아닌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고자 기꺼이 목숨바친 많은 이들이 있었다.

세상 모두가 더 긴 삶을 꿈꾸며 클론을 원하지는 않는다. 엄마의 소원대로 은하철도999에 탄 철이도 기계인간이 되어 영생을 이루는 삶을 택하지 않았다. 유한하기에 고통과 두려움이 있는 삶. 그러나 그 유한성과 많은 제약이 오늘을 가치 있게 한다. 오늘을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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